강군의 죽음 이후 거리에는 일제히 푸른색 현수막이 걸리기 시작했다.

종로에서, 시청에서 휘날리는 현수막의 대열들. 「폭력시위 이제 그만, 합심하여 민주발전」이라며 제도언론의 양비론을 깔고 있는 이 현수막들은 「4.19의거XX회」「XX총연맹」등을 단체명의로 내걸고 있다.

일제시 시·도 차원으로 현수막을 게재할 수 있는 기동력이나 금력, 그리고 이를 눈감아 주는 민주경찰(?)까지 구비한 이들은 진정 이 시대 구국충정에 불타는 분들 임에 틀림없다.

이들은 『화염병을 놓아라. 최루탄을 버려라』며 「올바른 시위문화 정착」만이 강군과 같은 비극을 없애는 길이라고 목청껏 외치고 있다.

그러나 평화대행진을 하는 중에 맞으면 얼굴이 찢어진다는 거센 물대포와 최루탄을 쏟아붓는 현실속에서 선진국과 같이 유모차를 끌고 시위에 참가하는 정경을 기대하기란 애초에 무리인 것이다.

결국 화염병과 돌이 있는 한 민주국가는 요원하다는 이들 단체의 논리는 정부의 사주를 받은 「앵무새의 논리」일 뿐이다.

얼마전에 이런 의심을 굳혀주기에 충분한 부산최대의 폭력조직 두목 이모씨의 법정증언이 있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정부특수기관원」이 『이 혼란한 시국을 이끌어갈 올바른 우익단체가 필요하다』며 「화랑XX회」라는 극우단체를 조직할 것을 권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 자신이 주동이 되어 85년부터 부산등지에 「운동권 비난집회」를 수차 열었다고 한다.

더욱 가관인 것은 특수기관원이 『선진국에 가서 우익단체의 활약상을 견학하고 오라』며 이들 폭력배를 일본 마치아인 야쿠자에 소개, 의형제를 맺도록 했다는 것이다.

바야흐로 죽도·생선회칼로 무장한 폭력배들이 『우익단체 국제적연대로 민주세력 척결하자』는 살벌한 구호를 외칠 판이다.

몇해전에 모교수가 월간지에 「이땅의 우익은 죽었는가!」라며 서슬파랗게 총궐기를 외쳤던 악몽도 새로운데, 현재 속속 드러나고 있는 「우익」의 정체는 우리를 경악케 한다.

이승만 정권시절의 관주도집회도 모자라 이제 폭력배를 동원, 애국민주세력을 탄압하는 현 6공의 작태는 권력누수를 막아보려는 치졸한 몸부림에 지나지 않음을 우리는 똑똑히 알고 있다.

아니, 우리들은 민주세력에 대한 악선전이 강화되면 될수록, 이를 공허한 메아리로 만들 수 있음을 저들에게 분명히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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