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절반
하늘의 절반
  • 이대학보
  • 승인 1991.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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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쌍둥이의 죽음은?
얼마전 신문지상을 통해 본 세쌍둥이의 죽음! 이 죽음을 단순히 부모의 잘못과 부주의로만 돌릴 수 있는가? 우리는 정말 언제까지 이런 기사를 보아야만 하는가? 작년 남매의 질식사건이 가슴 속에 남겨져, 채 지워지기도 전에 두번째 비극은 다시 발생했다.

이는 비영리 탁아소를 설치하고 만반의 준비를 하지 않은 정권이 제 1차 책임이며, 정권의 그러한 태도를 강제해내지 못한 우리에게 2차 책임이 돌려진다.

우리는 똘망똘망한 세쌍둥이 죽음의 공범인 것이다.

이제 더이상 어느 아이도 사회적으로 죽임을 당해서는 안된다.

그런 의미에서도 우리는 탁아소를 마련하는 등 준비를 해야한다.

또 사회는 점점 더 복잡해지고 분업화되면서 여성들도 사회에 진출하여 직업을 갖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특히 저소득층 가정의 경우는 이러한 현실속에 탁아소를 절실히 요구하고 있다.

여성들은, 대학졸업후 직업을 가졌으나, 결혼을 하게되고 혹은 아이를 갖게되면서 직장생활을 그만두게 마련이다.

아이들은 엄마가 돌보아야 한다는 사회적 통념속에 여성의 자아실현의 욕구는 퇴색해 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여성도 인생의 주체로서, 일의 주체로서 끊임없는 발전과 자아실현을 위하여 직장생활을 할 수 있도록 제도화된 탁아시설이 필요하다.

다음 사회적으로 더욱 요구되는 부분이 가정상의 이유로 무슨일이든 안하면 안되는, 그리하여 어린 아이들만 집에 놔두고 나가야 하는 문제이다.

그런데 오히려 탁아소에 관한 법률 규정엔「위생·청결·시설규정등이 맞지 않으면 탁아소를 설치할 수 없다」고 하였다.

그러나 빈민지역, 공단지역 등의 저소득층 지역은 재정적인 여건이 너무나 궁핍하여 그 시설규정에 맞추기가 힘들다.

별다른 대책도 없이, 아이에게 바람직하지 않다라는 이유를 내세워 문을 닫게하면 이때 아이들은 방속에 갇히게 되고 비극적인 사고가 나기도 한다.

유용하고 합당한 탁아소의 설치를 위해 정부의 재정적 지원이 필요하리라 본다.

그리하여 다시는 비극적인 사고가 생기지 않도록 말이다.

여성이 아이때문에 일을 못하고, 불안해하지 않도록 사회적 제도의 뒷받침이 필요한 것이며 그중의 하나가 바로 탁아소 설치 문제인 것이다.

문혜련 유아교육학과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