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년 5월부터 실시될 교육자치제

91년 5월, 30년만의 지방자치제(이하 지자제)와 함께 교육자치제(이하 교자제) 가 실시된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교육현실은 「자치」가 전혀 불가능했던 것이 사실이다.

교사는 단위학교 운영은 커녕 교육내용조차 결정할 수 없는 지식전달자에 불과했고, 학생들은 문교부와 학교측의 학생회자치에 대한 탄압과 과도한 입시경쟁의 직접적 피해자였다.

학부모들은 사용내역이 불분명한 육성회비에다 방위세로 전락한 교육세까지 엄청난 교육비 부담을 지고 있는 실정이다.

무엇보다 교육내용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제3공화국은 새마을운동으로 눈부신 경제성장…」「제5공화국은 정의사회 구현에 앞장서…」식으로 부도덕한 정권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사용되어 왔다.

이런 현실에서 교자제는 지금까지 정권에 독점·통제되었던 교육권이 교육주체인 국민에게 돌려져, 교육사안결정에 직접 참여하고 요구를 제대로 실현할 제도적 틀이 마련된다는 점에서 온국민을 설레게 했다.

그러나 이러한 기대는 6일(수) 임시국회에서 정부와 민자당의 제출안이 강행통과되고 법사위에 넘겨짐에 따라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올바른 교자제 실현을 위해서는 중앙정부의 교육독점을 막는 지방분권의 원리와 주민의 직접참여, 일반행정에서 분리된 교육행정, 확고한 정치적 중립성과 교육의 전문성 그리고 단위학교의 교육민주화 등이 보장되어야 합니다』라고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하 전교조)교권법규국 강현선씨는 말한다.

그러나 현재 「지방교육행정의 조직과 운영에 관한 법률」이라는 민자당안은 현행교육법의 교육자치규정보다도 교육자치의 실질내용을 없애 오히려 더욱 정권에 종속시키고 있다.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첫째, 교육위원횡의 설치단위를 시·군·구 기초단위까지가 아니라 통제에 용이한 시·도 광역단위에만 설치하여 중앙의 통제를 최대한 유지하도록 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지역주민의 특수한 교육적요구를 수렴, 반영할 수 없을 뿐더러 교자제의 취지가 거의 실현될 수 없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둘째, 전교조안이 「교육위원회가 교육·학예에 관한 조례를 제정 및 개정할 권한과 예·결산의 의결권을 갖도록 하는 것」과 달리, 민자당안은 교육위원회가 단지 지방의회에 제출할 권한만을 갖게된다.

이것은 「교육의 자주성과 정치적 중립성 확보를 위해 교육행정이 일반행정으로부터 분리」해야하는 원리에 크게 어긋나 한국교총을 비롯한 여론의 반대에 부딪히고 있다.

셋째, 교육위원과 교육감을 직선이 아니라 의회에서 선출하고, 교육감 아래 대통령이 임명하는 부교육감을 두어 견제하도록 한다.

이에 강씨는 『이안은 반여당 성향의 위원선출을 막으려는 정치적 속셈이며 교사, 학생, 학부모가 교육정책결정에 참여할 길을 제도적으로 막고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넷째로 민자당안은 전교조안이 무엇보다 중요하게 주장하고 있는 「단위학교의 민주적 운영보장」에 대해 전혀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각급학교 교무회의를 의결기구화하고, 교장의 선출은 학교현장의 민주화에 필수요소이다.

의견수렴구조는 구체적인 교육현장에서 「어떻게 교육할 것인가」의 문제에 의견을 모으는 과정에서 생기며, 정부에서 교육감으로, 교육장, 교사, 학생순의 명령에 의한 획일과 통제구조에서 벗어날 가장 구체적인 해결의 실마리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민자당안의 국회통과를 막기 위해 전교조는 「지자제선거와 교자제 대책위원회」를 구성했고 현재 「교육자치법안」을 만드는 등 활동을 하고 있다.

『민자당안이 의결되어 법안반영은 힘들지만, 민자당안의 허구성을 폭로하는 신문광고, 책자발행, 캠페인 등 홍보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또 전교조대의원대회에서 「교육자치선언」을 선포하고, 학교민주화와 교육여건개선을 위한 투쟁을 통해 전교조를 강화할 것입니다』라고 강씨는 밝힌다.

지자제 선거결과에 따라 더 구체적인 대응책을 세울 예정이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라는 옛말을 빌지 않아도 궁극적 민주화를 위해서는 교육을 통해 이루어지는 구성원의 민주의식 함양이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그것은 형식적 교자제가 아니라 실제교육「자치」속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지금은 이미 민자당안이 공고된 상황이므로 교육주체들의 결집이 시급한 때다.

조직화된 주체들이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는 시도조차 없다면 교육은 또다시 「정권유지의 대변자 양성소」에 다름아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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