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깊었던 격동의 전환기 80년대를 마감하고, 바야흐로 역사의 순풍 「 통일시대 」의 궤도를 개척한 1990년. 학계는 그 새해벽두부터 북방에서 불어닥친 페레스트로이카 돌풍으로 열병을 앓는다.

열병은 몇몇 돌팔이(?) 학계의사들의 사이비진단으로, 혹은 진보진영에서 조차의 개혁에 대한 불철저한 이해로 완쾌되지 못한채 독일통일이라는 20세기 지상 최대사건에 직면한다.

「 사회주의권 개혁과 한반도통일」, 바로 이것이 90년도 학술운동의 최대쟁점으로 떠오르게 된것이다.

불치의 병 페레스트로이카 돌풍 우선, 사회주의권 개혁을 둘러싼 진보적 학술운동진영의 움직임을 살펴보자. 여타의 논의들 가운데 가장 두드러지게 이론주의적 편향을 드러낸 페레스트로이카 논쟁은 개혁의 객관적 전망을 내오지 못한채 한해를 넘기게 되었다.

완결된 이론구조 혹은 풍부한 근거가 뒷받침된 가설이 아닌 오로지 주장으로만 표출돼 온 페레스트로이카에 대한 관점들은 천차만별이다.

이를 크게 네 가지로 분류해 보면 첫째, 페레스트로이카 초기논쟁 당시 강세를 보인 것으로 더 나은 사회주의로의 발전으로서 개혁의 필요성을 적극 인정하고 결과에 대해서도 매우 낙관적 전망을 갖는 입장이다.

둘째는 맑스-레닌의 원전에 철저히 입각해 페레스트로이카의 이론적 우편향성을 강력히 비판하는 입장이며 셋째는 북한사회주의 논리를 강조하며 페레스트로이카를 궁극적인 사회주의 인터내셔날의 포기 반제투쟁의 포기로 일축하는 입장이다.

마지막으로 새로운 사고에 의해 통렬히 비난받는 스탈린주의는 당시 사회주의권 상황에서는 필연적일 수밖에 없었음을 강조하는 일명 스탈린이즘도 출현했다.

이러한 관점들외에도 수많은 갈래의 불분명한 주장들이 제기되엇던 만큼, 90년 한해동안 전개된 사회주의 개혁에 대한 연구방법논쟁은 탁상공론에 불과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에 대해 역사문제연구소의 김동춘씨는 『진보적 학술운동의 개혁에 관한 연구방법은 현존사회주의 국가로서 소련의 정치 경제적 상황을 연구하기보다는 연구자 자신이 해석한 맑스-레닌주의에 근거하거나 나름대로의 정치적 결단으로 페레스트로이카를 재단해 온 경향이 짙다』고 지적 평가한다.

또한,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의 최성씨는 『페레스트로이카의 혁명적 파장이 변혁운동진영에 일대 충격적 위기를 던지고 있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학술운동진영의 수정주의론, 제국주의야합론, 탈사회주의 등 교조적 자의적 해석은 실천운동진영뿐만 아니라 대중들에게 극심한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한겨레신문으로 표출된 일련의 무원칙한 논쟁상은 학술운동 진영에 여전히 연구자적 편향이 잔존해 있음을 입증한다고 밝힌다.

현재는 다소 침잠상태에 놓여있는 페레스트로이카 논의는, 이제는 개혁자체를 사실 그대로 인식해야할 필요성과 함께 러시아 혁명이후 사회주의권의 변화를 역사적으로 재검토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즉, 학술운동 진영이 사회주의 개혁의 객관적 전망과 그것이 제 3세계 민족민주운동에 미치는 영향력에 대해 설명할 수 있으려면 개혁의 정치 경제적 토대분석이라는 매우 기초적인 작업부터 다시 시작해야하는 것이다.

한반도 통일, 꿈인가 현실인가 1990년 10월 3일, 독일 통일! 지축을 뒤흔든 이 사건이 낳은 파장은 한반도 38도상의 철책선에서 더욱 거세게 굽이쳤다.

과연 한반도의 통일은 2천년대가 오기전에 이루어질 것인가, 학술운동은 독일통일에 대한 올바른 시각정립과 그것이 한반도에 미치는 영향분석 및 한반도의 구체적 통일 방안을 모색하는 작업으로 또한번의 몸살을 앓는다.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 특히 4대강국의 한반도전략분석을 중심으로 교차승인의 가능성, 독일통일식 흡수통합론의 본질, 자주적 교류의 합의, 평화 군축운동의 전개라는 논점들로 비교적 활발한 논의를 진행시켜온 학술운동은 사회주의권 개혁과는 상대적을로 일정수준의 합의점과 성과물을 얻기도 했다.

통일논의 가운데 가장 격렬한 논쟁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 전면개방 자유왕래를 통한 자주적 교류의 현실성이다.

이는 8.15범민족대회를 전후로하여 학생운동을 비롯한 실천진영에서 보다 신랄한 비판이로고간 것으로, 자주적교류의 결과는 독일통일식 흡수통합만을 초래할 따름이라는 우려의 목소리이다.

이에 대해 한겨레사회연구소 김영환씨는 『흡수통합론의 발상은 북한체제에 대한 남한체제의 우월적 입장에서 나온 편견으로밖에 볼 수 없다.

』 고 전제하고 『자주적 민간교류는 분단직후 40년동안 꾸준히 관철돼온 정부의 대북창구일원화의 허구성을 폭로해냄과 동시에 자주적 통일 운동의 주체들에게 합법적으로 족쇄를 채울수 있는 국가보안법 철폐투쟁을 대중과 함께 전개해나가는 것을 그 본질로 한다』고 밝힌다.

또 한가지 관심거리로 떠올랐던 것이 「 소련식 교차승인」의 개념이다.

두개의 세계진영간의 대립해소를 전제로 하며, 70년대의 두개의 한국 고착화라는 미국식 교차승인을 폐기한 이개념은 교차승인을 냉전해소와 평화운동의 한 방식으로 제기한다.

그러나 이개념이 긴장완화, 실질적 군비축소의 기미가 전혀 없는 「신데탕트의 무풍지대」 한반도에서 제대로 관철되고 있는가는 여전히 의문의 여지가 많다.

아직도 멀기만 한 북한연구방법론 앞서 대북편향의 우려라는 조심스런 문제제기가 있긴했으나, 통일운동에 대한 논의는 자연스럽게 북한연구방법론으로 자연스럽게 북한연구방법론으로 강조점이 주어지게 마련이다.

실제로 두차례에 걸친 남북고위급회담을 통해 북한이 보여준 당국자간 남북협상에 대한 적극적 자세와 조 일 수교제의 등 일련의 움직임을 둘러싸고 학술운동진영은 북한의 변화를 진단하는 작업을 활발히벌이고 있는중이다.

지난 80년대말까지만해도 실천진영에서는 「북한 바로알기운동」의 홍보차원으로, 학술운동진영에서는 북한사회의 내재적 논리를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경향을 보여왔다.

그러던 것이 올해로 접어들면서 구체적 현실로 다가온 사회주의권 개혁과 한반도통일운동으로 인해 북한에 대한 막연한 동족애는 통일의 또 하나의 주체로 동원해야 할 민족공동체임을 분명히 자각하게 된 것이다.

한국정치연구회의 이종석씨는 앞으로의 북한연구방법론에 대해 『통일은 한체제에 대한 다른체제의 절대적 우위에서는 시도될수 없다』고 전제한후 『통일문제의 접근방식은 기존의 변혁과 통일의 선후를 다투는식의 진부한 논쟁을 지양하고 긴박한 세계정세와의 연관속에 남북의 적대관계개선과 남북각각의 체제개혁이라는 두 측에서 내재적, 비판적 접근을 시도해야한다』고 말한다.

북한연구방법론에 있어 주목할 것은 양체제비판론에 대한 유영구, 김영환씨의 비판적 시각이다.

『근본적으로 정권의 속성이 다른 남과 북의 권력체계와 체제를 동류항으로 놓고 비판한다는 것은 통일운동의 보천영역에서 통일주체와 반통일세력에 대한 불분명한 규정으로 대립전 선축을 무너뜨릴 위험이 크다』 는 것이다.

실천의 「발」이 필요하다.

어느 사회과학 정기간행물지에서 마련한 학술운동에 과한 좌담의 끝머리에서 한 젊은 연구자는 이런 말을 했다.

『...지배집단은 발과 머리를 공유하고 있는데 진보적 지식인들은 발은 없고 머리만 있는 느낌입니다』 진보적 지식인들의 연구는 운동과 결합되지 않고서는 구체적으로 실천할 수 없는 발이 없기때문에 논의가 관념화되고 이데올로기화된다는 의미이다.

초보적 정치투쟁, 집단적 선적작업, 대중교육사업, 분과를 넘어선 공동연구작업등 산재한 과제를 떠맡고 결성된 학술단체협의회가 그 존폐위기에 처해있다.

이는 개별연구자들의 정치적 위기상황에 대한 인텔리적 안일주의와 순수학문의 고집들이 빚어낸 결과이기도 하다.

바로 눈앞에서 수십명의 논객의 손발이 묶여 나가고, 수만권의 책들이 불살라지는 상황을 목격하면서도 단한번의 조직적이로 강고한 투쟁으로 맞서보지 못한 90년대 학술운동 조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판적 아카데미즘이라는 안일한 굴레는 벗고 변혁의무기로 우뚝 성장한 학술운동. 이제 무겁고 딱딱한 책상다리를 박차고 나와 민족해방 민중해방세상을 향한 변혁의 무기를 힘껏 움켜쥘때도 되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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