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해방」그 하나로 뭉쳤던 우리

밤 9시 30분이 넘었는데도 아무 연락이 없었다.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하는 걸까? 혹시 안기부나 보안사의 프락치 공작으로 장소가 노출되어 집회성사가 힘들어진 걸까?』갑자기 영하로 떨어진 추운 밤바람에 몸을 움츠리며 갖가지 추리와 우려 속에서 무언가 소식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10시가 훨씬 넘어서야 움직임은 시작되었다.

『삐빅, 삐삐삐…』범죄와 모든 폭력에 대한 전쟁선포를 한 후 치안유지라는 명목으로 곳곳에 박혀있던 폭력적 경찰들이 우리의 행렬을 보고 어딘가에 보고하는 소리가 들렸다.

결국 그들의 치안유지라는 것은「자본가 세상의 치안유지」이상은 아니라는 사실을 몸소 깨달으며 우리의 행렬은 고려대 정문으로 향했다.

무사히 대회장 진입이 끝난 후 우리들은 서로의 11일 대회 사수에 대한 결의를 모으는 시간을 가졌다.

전노협 가입을 공약으로 민주노조가 당선된「전진하는 대우조선 노동조합」을 비롯, 5월 골리앗 투쟁과 그 총파업 연대 투쟁으로 위력을 과시해던 울산현대중공업, 현대 정공 등의 울산지역 노동자들, 마산·창원 노동자들, 병원노련, 언론노련 등의 업종협의회, 그리고 소위 막장인생들이라고들 말하는 광산 노동자들까지도 힘차게 결의들을 밝혔다.

대회장의 열기는 투쟁의 현장에 어김없이 찾아든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본가 세상을 녹아없애버릴 만큼이나 뜨겁게 달아 올랐다.

다음날「내각제 개헌저지와 민자당 해체 및 90전국노동자대회」와 문화제가 있은 뒤 본격적으로 본대회가 시작되었다.

『태일이가 위대한 인간이 아니여. 어떠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꿋꿋하게 열심히 투쟁하는 바로 여러분들이 바로 전태일 인거여』라고 말씀하시던 전태일 열사 어머니 이소선씨의 말을 들으며 다시 한번 우리의 어깨가 무거워짐을 느꼈다.

이번 90전국 노동자대회는 전태일열사의 정신을 계승하는 의미뿐만 아니라 지역 업종 대공장 노조까지 포괄한 전국적 차원의 노동자계급의 단일한 투쟁이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녔다고 생각한다.

또한 경제적 요구뿐만 아니라 「노태우정권타도」라는 권력에 대한 명확한 지향점을 갖는 전투적 노동운동의 맹아를 확인하는 자리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지금 학내는 선거일정으로 바쁘다.

물론 우리의 선거는 기성정치판과는 그 지향에 있어서 명확히 다르다.

그러나 그 때문에 현시기의 투쟁을 방기하는 것은 용인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11일 노동자대회에 임했던 우리의 미비한 준비를 평가하고 25일 민중대회는 전투적으로 사수해 내도록 해야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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