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으로 쟁취한 직선제 바뀔 수 없다

87년만 해도 국민들의 민주화열기에 의해 거론되기조차 어려웠던 내각제 개헌논의가 요즘 들어 버젓하게 정권에 의해 공론화되고 있다.

또한 이와 관련해 의원내각제 추진에 관한 노태우 김영삼 김종필의 합의각서가 유출되어 거대여당 민자당은 분당위기에까지 처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위기상황속에서도 노정권은 등돌린 김영삼을 다독이기보다는 오히려 「그래도 내각제는 추진한다」는 입장을 그대로 고수하고 있다.

이렇듯 정권은 어떠한 상황변화에도 불구하고 내각제 개헌을 끝까지 밀고 나가겠다는 굳은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내각제 개헌의 제기배경에 대해 서울지역 총학생회연합(이하 서총련) 의장 윤진호군(고대 총학생회장 산업공학·4)은 『노태우정권은 87년 대통령선거에서 금권, 관권 선거전을 동원했음에도 불구하고 37%의 지지밖에는 확보하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노태우정권에게 다시 선거를 치룬다는 것은 겁나는 일일 수 밖에 없다는 위기의식속에서 내각제가 제기된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즉, 87년 이후 노태우정권의 은밀한 탄압속에서도 민족민주운동세력은 급격히 성장·강화되어왔다.

전노협의 탄생, 전농의 출범, 전교조의 결성이 바로 이를 증명한다.

그 외에도 국민들의 민주화의식은 87년 대통령 선거 이후 급격히 성장하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정권이 대통령 직접선거라는 제도로 집권을 더이상 지속하기는 어려워진 것이다.

결국 정권은 안정적 장기집권을 위해 지난 87년 국민들이 투쟁으로 쟁취해 낸 대통령 직접선거제도를 의원내각제로 개헌하려는 것이다.

정권이 자신의 살길로 부르짖고 있는 내각제의 형태는 이원집정부제이다.

이원집정부제는 대통령 중심제와 내각제의 혼합 절충형이라 할 수 있다.

대체로 이원집정부제에서 행정부는 실권을 가진 대통령과 수상으로 이원화된다.

이 속에서 대통령은 외교·안보·국군통수권 등 막강한 실세를 갖게 되고 수상은 일반행정에 관한 권한만을 가지게 된다.

또한 긴급사태 발생시 대통령은 일반행정에 관한 권한을 포함한 국가긴급권을 갖는다.

이러한 이원집정부제 하에서 대통령 독재의 위험성은 매우 크다.

즉, 대통령은 외교·국방·안보·국가긴급권이라는 엄청난 권한을 가지면서 수상·각료·의회 그리고 국민 위에 군림하게 되고 이를 통해 강력한 독재를 행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내각제 개헌 추진과정에 대해 윤군은 『노정권은 6공화국 출범부터 내각제 개헌을 모색해 왔고 이 음모가 가시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3당 야합에서부터입니다』라고 지적한다.

정권은 지난 1월 22일 밀실야합으로써 3당을 합당해 내각제 개헌에 필요한 국회의원 정족수를 채운 것이다.

그 다음으로 정권은 내각제를 통한 장기집권에 현실적으로 필요한 법적·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였다.

지난 7월 국민들의 심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여론을 무시한 채 날치기 통과시킨 방송관계법·국군조직법이 그 대표적 예이다.

즉, 개편된 군조직법은 그간 국방부장관의 보좌역할을 하던 합참의장의 권한을 대혹 강화해 군 지위권을 그에게 집중시키는 것을 주요 골자로 하고 있다.

이는 군의 지휘권을 합참의장에게 집중시키고 이를 내각에서 분리해 대통령의 배타적인 관할하에 두고자 하는 의도를 드러낸 것이다.

또한 정권은 방송관계법의 개악을 통해 방송위원회의 권한을 강화했다.

즉, 방송위원회의 방송심의권한 강화로 방송은 방송사 자체의 사전심의를 거친 후, 방송자문위원회의 심의를 통해 또 다시 걸러지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방송위원회의 사후심의를 받아야 하는 것이다.

정권은 이러한 3단계 심의 절차를 법제화함으로써 정권의 뜻에 어긋나는 방송은 원천 봉쇄해 버릴 수 있게 된 것이다.

또한 정권은 국군조직법과 방송구조개편과 더불어 정치구조의 변화를 꾀해 내각제를 통한 장기집권의 구도를 탄탄히 다져놓았다.

안기부와 통일원, 그리고 감사원을 대통령 직속 기구로 편제해 놓은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즉, 정권은 민간차원의 통일논의와 자주적 교류를 막고 대북창구를 독점해 통일을 정권안보의 수단으로 이용하기 위해 통일원을 대통령 직속기구로 만든 것이다.

또 정권이 안기부를 대통령 직속하에 둔 것은 안보와 외교의 중추적 역할을 수행하는 안기부를 대통령이 완전통제해 내각제 하에서도 대통령의 실세를 유지하겠다는 의도로 파악되어 진다.

『정권은 내각제로 가기 위해 법적·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놓고, 내년 초를 그 개헌시기로 잡아 놓았습니다.

따라서 정권은 이제 거의 막바지 단계로 개헌 시기에 있을 국민들의 저항을 사전에 막기 위해 민족민주운동세력에 대한 탄압을 「전쟁선포」라는 외형으로 내놓았습니다』라고 윤군은 현시기를 말한다.

이에 서총련에서는 대표적인 민족민주운동세력의 하나인 전대협 의장 송갑석군(전남대 총학생회장 무역학·4)의 연행과 전쟁선포후 학내에 공권력이 무차별 투입되는 사태를 규탄하며, 이후 11일 노동자대회와 25일 민중대회에 결합해 내각제 개헌의 본질을 폭로해 나갈 것이다.

또한 현재는 각 학교마다 선거시기이므로, 선거공간을 최대한 활용해 그 속에서 선거에 알맞는 내용의 투쟁들을 벌여 나갈 것이다.

이와 함께 국민연합에서는 25일 「노태우 정권 퇴진 90 민중대회」를 준비하고 있다.

이에 대해 국민연합 사무처장 최한배씨는 『90 민중대회는 각 부문 민중의 정치적요구를 집약하여 투쟁함으로써 내각제 개헌으로 장기집권을 획책하는 노태우 정권을 퇴진시키고자 하는 민중들의 투쟁의지를 과시할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대통령직선제를 쟁취하기까지는 지난한 투쟁과 죽음이 있었다.

국민의 투쟁으로 쟁취한 제도는 국민의 합의가 없는 한 결코 정권의 안정적 집권을 위해 바뀌어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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