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길라(행정 4) 새벽 4시 『따르릉,따르릉…』다급하게 울리는 전화벨소리에 놀라 눈을 떴다.

근처에 있는 제방이 차오르는 물의 힘에 못이겨 무너졌다는 삼촌의 전화를 받고 급히 밖으로 나가보았다.

평상시에는 익슥하지 않은 사이렌소리, 호각소리, 그리고 천지를 뒤흔드는 듯한 헬리곱터 소리가 소란스럽게 들려오고 있었다.

또 많은 사람들이 보따리를 이고지고 조금더 안전한 곳으로 가기위해 부산을 떨고 있었다.

나는 내눈으로 직접 상황파악을 해야겠다는 마음에 무너진 제방으로 발길을 재촉하였다.

거기에는 여느때 같으면 통학·출근버스로 붐비고 있을 도로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고, 논과 밭이 붉은 흙탕물에 잠긴것을 보며 눈시울을 적시고 있는 아저씨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한편에서는 신문사, 방송국 기자들의 열띤 취재경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거기다 몇년전 홍수피해가 있었을 때 TV를 통해서 보았던 헬기의 인명구조작업이 지금 내머리위에서 벌어지고 있었고. 집앞 국민학교에는 어린 학생들대신에 초췌해진 모습으로 컵라면을 먹는 사람들로 가득했고 버스행렬 대신에 마대자루를 실은 군용덤프트럭의 행렬이 끊이질 않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단전, 단수가 되어 TV 뉴스도 볼수 없었고 어려움은 더욱 가중되어 가고 있었다.

정오쯤이 되어서도 마치 온 마을을 포위라도 하듯 앞뒤로 물은 계속해서 차오르고 있었다.

게다가 계속되는 헬기의 요란한 소리에 머리가 말할 수 없이 아파왔다.

교통수단은 완전히 마비되었고 논위에 떠가는 구명보트와 헬기만이 유일한 교통수단이 된것을 알았을때는 등골이 오싹해 지면서 고립감마저 들었다.

이처럼 하루종일 계속된 군·관·민 혼연일체의 노력덕분에 이제 더 이상 물이 들어오지 않고 조금씩 빠지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땐 긴장을 풀고 크게 숨쉴 수 있을겉 같았다.

그러나 지금도 여전히 덤프트럭은 무너진 제방을 막기위한 돌을 나르느라고 부산을 떨고 있고 헬기의 요란한 소리도 그치질 않고 있다.

만든지 60여년이나 되어 낡고 허물어지기 쉬운 제방을 지역주민들의 위험호소에도 불구하고 재정적 사정이라는 이유로 방치해버린 정부당국의 태도를 꼬집어 주기라도 하듯 수마는 그곳을 강타하여 이처럼 엄청난 수해를 가져다 준것이다.

이제 요란했던 수마는 끝이 났지만 우리에게 남겨진 것은 아츰과, 이러한 아픔을 의연히 딛고 일어서야 한다는 의지인것 같다.

지금은 이웃이 겪고 있는 아픔을 나몰라라 하지 않고 조금이라도 빨리 그 아픔을 딛고 일어설 수 있도록 서로가 서로에게 버팀목이 되어야할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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