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의 우월성 과장한 이데올로기 공세

동북아정세의 급변 최근 동북아 정세가 급변하고 그 중 핵심지대인 한반도에서의 평화와 평화통일을 위한 다각적 모색 역시 급전되는 듯 하다.

미·북한 간의 대화창구 접촉 빈번화, 미·소 정상회담에서 동북아 및 한반도 문제의 의제화, 기습적(?) 한·소 정상회담의 진행, 소·일 정상회담의 예정 등이 전자가 보여주는 징표하면, 최근 개최된 남북고위급 회담의 진행, 한판의 사기극으로 끝나버린 민족대교류 선언, 그리고 범민족 대회의 성사를 둘러싼 대립, UN가입 문제를 둘러싼 공방, 북한의 평화통일을 위한 포괄적 방안의 천명 등이 후자의 현상이다.

이러한 몇가지 징표와 현상들은 그 진의와 전망의 불명료함에도 불구하고 지난 시기와는 달리 전진되고 희망적인 것들이라 생각된다.

그러나 역사의 진보는 이처럼 새로운 몇가지 사실과 현상에 대한 막연한 추측과 환상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닐진대, 좀더 사실 하나하나에 대한 엄밀한 주시와 과학적 비판의식 또한 필요한 때가 아닌가 한다.

흡수통합 가능한가? 최근 일각에서는 한반도 통일을 위한 미국과 남한정권의 정책적 방향이 「북한의 남한에로의 흡수통합」으로 선회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아마도 이러한 주장의 배경에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현상적 이유가 게재되고 있을 것이다.

첫째는 최근 8.15를 전후해서 남한정권의 일방적 「민족대교류 선언」과 「범민족대회의 성사보장」이라는 대담한 조처를 해석하려는 배경과 관련된 것이다.

둘째는 그 배경을 둘러싸고 유럽에서 보여진 「동독의 서독으로의 흡수통합」이라는 우경적 독일통일방식에 대한 한반도 통일방식으로의 적용가능성에 대한 판단이다.

세째는 소련과 동구의, 특히 동유럽과 독일통일의 과정에서 보여지는 자본주의 진영의 현상적 우위와 자신감을 바탕으로 한 미국과 남한정권의 대북자세의 공세적 전환이라는 추론이다.

이러한 세가지 사실에 대한 판단은 전혀 근거없는 생각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필자는 그 자체가 본질적이며 현실의 추세에 대한 전면적 과학적 인식이라고 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배경과 관련해서, 삼척동자도 다 알만큼 「민족대교류」의 허구성이 판명되었고, 「범민족대회」의 추진과정에서 보여진 남한정권의 노골적 방해간섭과 「국가보안법·통일인사의 석방불가」라는 요지부동의 자세가 이를 뒷받침한다.

둘째 배경과 관련해서는, 독일과 한반도의 역사적 처지와 조건이 전혀 다름에 대한 과학적 인식이다.

남: 북≠서:동 「동독」이 지닌 사회적 특성은 「북한」이 물질문명에 대한 기본적 요소외에도 오히려 보다 본질적으로 추구해온 것으로 알려진 사상위주의 사회체제의 운영이라는 것과 전혀 대별되는 것이다.

이러한 점들은 동독이 서독의 자본과 물질문명에 대해 투항하였던 사회적 지탱력을 능가하는 또 다른 강력한 힘으로 북한사회의 지탱력을 제공할 것이다.

또한 「서독」이 지닌 사회적 특성은 「남한」정권이 지닌 권력적 기초와 남한자본의 취약함으로 인해 전혀 동일하지 않다.

남한정권의 권력적 기반은 안보와 반공이데올로기에 기초한 것으로 이것에 근거하지 않고서는 권력의 지탱이 매우 위태롭다.

남북관계의 통일을 향한 진전을 남한정권이 주도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대결적·냉전적 정치기초를 스스로 해체하지 않으면 안되는데, 그것은 곧 남한정권의 정치적 운명과 직결되는 문제이다.

또한 남한자본의 취약성은 외세의존하의 한국경제의 모순이 집약적으로 표출되는 현실속에서도 확인된다.

남한자본 그 자체만의 힘으로 전혀 다른 북한의 사회주의 경제체제 자체를 흡수통합할 월등한 여력이 존재하는가에 대한 근본적 재검토가 필요하다.

실제로 수입개방과 UR협상의 진전에 예비하여 남한자본의 새로운 정비와 준비의 일환으로 거론되던 소위 「산업구조 재조정」의 진행이 용이하지 않음과 이 과정에서 보여지는 자본의 유출이 부동산투기로 이어지는 사회경제적 현실을 주목할 때 매우 회의적 발상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우리식의 개발」정책을 계속 고수해온 북한의 일련의 사회경제적 개방정책은 쉽사리 변경될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점 또한 북한경제의 흡수통합을 겨냥해야 하는 남한자본의 취약성을 증폭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이것이 가능한 유일한 길은 외세의 직접적 간섭과 외세자본의 힘에 의해서만 가능한데 이것은 전민족적 저항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미국 「신냉전」구축 원해 세째 배경과 관련해서는, 이데올로기의 허구성에 관한 문제이다.

실제로 사회주의권의 일련의 개혁과 개방 정책, 그리고 이로부터 근거한 전세계 정세에 평화와 공존기류의 작용, 그리고 전세계 질서의 새로운 정립의 과정에서 미국은 계속 수세에 처해 왔다.

이것은 동북아에서 군사적 힘의 우위를 지초로 계속적 패권과 주도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새로운 대응을 강요하는 요인이 되고 있으며, 특히 한반도 평화와 평화통일을 향한 민족내부의 다각적 노력과 저항의 고조에 따라 수세적 처지를 압박받는 현상의 타개를 위한 노력을 절박하게 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서 미국은 「현상유지」를 기본적 정책으로 겉으로는 「의사평화정책」을, 속으로는 한·미·일 군사동맹체계의 강화로 나아가는 「신냉전질서의 구축」목표로 양면적 대응을 해왔다.

이 과정에서 「교차승인」과 「두개의 국가로 UN동시가입」이라는 한반도 평화와 평화통일에 대한 개량적 방침이 놓여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사회주의권의 우경적 개혁과 개방이 현저하면서부터 미국은 「사회주의의 자본주의로의 평화적 이행」이라는 차원의 공세를 강화하였고, 이는 곧 최근 보여지는 한반도정책의 현상적 변화를 동반하는 것으로 연결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전반적 수세속에서 부분적 공세의 시도라는 측면을 탈피하고 있지 못한 것이다.

따라서 미국과 노정권은 대치상태에 있는 한반도에서 남한체제의 우월성을 과대선전하는 차원에서 사회주의권의 우경적 개혁과 개방을 이데올로기적으로 호도할 수는 있어도 그 이상을 진전시킬 수는 없다.

반통일세력 몰락의 서막 필자는, 최근 얘기되는 「흡수통합론」이 미국과 남한정권에서 주관적 의지로 타산되고 있거나, 혹은 운동의 일각에서 「정권의 주관적 의지는 공세적 의미로써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오히려 「흡수통합」 그 자체의 추진보다는 다음과 같은 구체적 의미가 중요하다.

첫째는, 한반도평화와 평화통일문제에 대한 주도권을 완고하게 행사해온 북한의 내외적 고립을 강화하여 그 정통성을 부분적으로 견제하려는 시도라는 점이다.

둘째는, 취약한 남한정권과 체제 정통성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보강이다.

세째는, 한반도 평화와 평화통일에 반하는 세력들의 주관적 의지와는 무관하게 객관적으로 파국과 몰락의 과정이 시작되고 있음에 대한 징표이다.

지면상 선언적 결론을 맺고있지만 훗날 보다 보강되고 풍부한 뒷받침을 할 수 있는 기대를 가지며 글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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