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미국에겐 저자세 농민에겐 최구탄과 방패

「우리 농민 다 죽이는 우루과이라운드 저지하자」. 「전농으로 똘똘 뭉쳐 쌀값 13만원 전량수매 쟁취하자」. 지난 7일 오전 11시. 안동역앞 광장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우루과이 협상저지 및 농민 생존권 쟁취 경북 농민대회」가 이른 아침부터 광장 주위를 가득 메운 경찰의 원천봉쇄로 장소를 변경해 산발적으로 진행되었다.

11시, 안동역. 농민·학생 등이 구호를 외치며 도로를 나서는 순간, 순식간에 터진 다연발 최루탄의 난사로 시위대열은 주변 골목으로 흩어졌다.

그러나 10여분 후 좀 떨어진 남문동 안동시장 골목에서 흩어졌던 대오는 다시 결집해 농민·학생·노동자 등 1천여명은 거리에 연좌한 채로 약식집회를 가졌다.

이날 대회에서 농민들은 평화적 집회를 여는데도 불구, 경찰은 최루탄을 무차별 쏘며 진압한데 격분하면서, 「수입개방 저지」와 「우루과이 라운드 반대」를 결의하였다.

경북농민회장 윤정석씨는 투쟁선언문을 통해 『노태우 정권은 우루과이 협상이 본격화되자, 농민을 보호할 대책마련은 커녕 전면적인 수입개방을 받아들이기 위해 농업포기·농업 말살정책인 「농어촌 발전 종합대책안」을 내놓았다』면서 『정부는 미국과 독점자본의 이익만을 보장하며 장기집권을 획책하는 반농민적, 반민중적 작태를 즉각 중단하라』고 주장하였다.

이날 대회에는 경북에서 농촌활동을 했던 본교생 9명을 비롯, 그외 안동대·경북대 등 500여명의 학생들이 결합하였다.

거리의 시민들은 유인물을 다소 공포스러운(?) 표정으로 받는 모습도 있었지만 길가에서 자리를 뜨지 않은 채 유심히 읽는 모습이었다.

때때로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시하거나 박수를 치기도 했다.

이날 참석한 노동자 박용철씨는 『우루과이라운드는 농민만의 일이 아니라 우리 민중 모두의 문제이기 때문에 일하다가 달려왔다』며 『민중생존을 압살하고 독점 재벌만 살찌우는 노태우 정권에 맞서 강력한 노농연대를 이룩하자』고 주장했다.

이날 참교육의 큰 플래카드와 깃발이 눈에 띄었는데, 김창환씨(전교조 경북지구 부위원장)는 『심을 작물도 곡물도 없고 다 자란 무우도 내다버리는 것이 우리 농촌의 현실이다』라며 『소외된 농민 아이들, 노동자 아이들을 참교육시켜, 노동하는 사람이 주인되는 세상 만들기 위해 전교조를 결성했다』고 말해 큰 박수를 받기도 했다.

집회가 30여분 진행되다가 갑자기 출현한 전경들에 몰려 2시 30분경 시위대열은 인근 목성 성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성당안 비탈길에 앉아 농민·학생들 5백여명은 연좌한 채 전경들과 대치해 농성을 벌였다.

성당 건너편 차도에서는 많은 시민들이 전경들 사이에 서서 격려박수를 보내기도 했다.

오후 5시경, 시위대는 성당밖의 행진을 시도하다 경찰의 무차별 최루탄 난사에 격분, 화염병 1백여개와 돌을 던지며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이 과정에서 학생·농민 30여명이 부상을 당했는데, 이중 안동농민회 사무국장 김경현씨는 쇠파이프로 온몸을 구타당해 병원에 실려갔으나 현재까지 혼수상태이다.

한편, 경찰에 의해 성당이 원천봉쇄되자 들어오지 못한 농민·학생들은 성당 뒷산을 타고 넘어와 오후 6시경엔 1천여명이 성당길을 메웠다.

농민과 학생들은 포위된(?) 속에서도 아는 사람을 만날 때마다 큰소리로 부르면서 인사·농담을 나누는 사뭇 여유있는 모습이었다.

농민·학생·노동자 등은 9시경 정리집회를 끝냈으나, 자리를 뜨지 않은 채 밤늦게까지 모닥불을 피워놓고 토론을 벌였다.

◇취재후기◇ 유난히 햇볕이 뜨거운 하루였다.

아들놈같은 전경과 몸싸움을 벌여야 했던 농민아저씨, 처음 맡아보는 최루탄 연기에 온종일 콜록콜록 재채기 하시던 아주머니… 이날 많은 사건들이 있었지만 특히 기억에 남는 사건 하나가 「무전기 탈취사건」인데, 싸움도중 상당한 역량을 보였던 전투조가 전경의 무전기를 탈취해 경찰쪽에서 난리가 났던 일이다.

(「무전기는 빼앗기느니 깨버려라」가 그들의 원칙이란다). 따라서 저녁 8시경 들어온 협상이 무전기교환과 연행자 석방이었는데, 그 때 무전기의 소재를 찾아보니 농민 한분이 집에 갖고가 다시 오려면 2시간이나 걸린다는 것이었다.

대단한 소동이었다.

비탈진 성당위 예수님 성상 밑에서 화염병 시위를 벌이던 것, 점심을 못 먹은 농민·학생들이 즉석으로 돈을 걷어 성공적으로 빵을 사와 나누어 먹은 일, 집회가 끝난 후에도 밤늦게까지 모닥불 피워놓고 얘기를 나누던 일 등 아직까지도 인상에 강하게 남는다.

이렇게 하루를 보내고 돌아오는 길 내내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국민을 기만하고 미국에게는 저자세로 굴면서, 이렇게 순박한 농민들은 최루탄과 방패로 내리찍는 정권, 과연 이 정권은 누구의 편인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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