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사태를 오히려 장기화·무력화시켜

지금 세계관심의 촛점은 지난 8월 2일 이라크의 쿠웨이트 진주에 따른 미국과 이라크의 대치상태에 있다.

이번 사태는 단순한 전쟁의 의미를 넘어서 세계경제를 좌우하는 원유를 둘러싼 것이어서 매우 심각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현재 형성되는 전선의 형태이다.

이제까지 있어왔던 어떠한 전쟁도 누가 총을 먼저 쏘았느냐보다는 그 전쟁이 어떤 성격인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도 처음에 이라크와 쿠웨이트의 지역분쟁이 제국주의와 아랍민족주의의 대결 전선으로 중심축이 이룩되었다.

미국은 정의의 십자군인가 중동사태를 보도하는 서방측이나 우리 나라 언론의 자세는 매우 편파적이다.

이들의 논조는 이라크가 전후 복구비용과 국내 불안의 해소를 위해 쿠웨이트를 침공했다는 것이다.

전혀 근거없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결론은 미국이 세계질서의 수호자로서 이라크를 응징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연 미국은 정의의 십자군인가? 이번 사태의 본질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먼저 중동지역문제를 알아야 한다.

원래 이라크와 쿠웨이트는 오스만 터키의 속주로서 하나의 국가였다.

당시 이라크는 바스라주, 파우주, 쿠드라주, 쿠웨이트주로 구성되었는데, 오스만 터키가 쇠퇴하자 영국제국주의가 침략하여 군사 요충지인 쿠웨이트주를 본토령(1889년)으로 선언했으며 1932년에는 이라크를 왕정으로 형식적 독립을 허용했다.

그러나 지금 사태의 핵심을 이루는 사건은, 1958년 이라크민중들의 반영투쟁이 고조되면서 카셈장군이 왕정을 타도하자 영국이 기득권을 계속 유지하고자 쿠웨이트주를 1961년에 독립국가로 선언해버린 데에서 시작된다.

그후 제국주의자들의 음모에 의해 이라크민족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두개의 국가로 분리되어 이라크는 아랍식 사회주의 정권으로, 쿠웨이트는 친서방왕정으로 유지되어 왔다.

이런 의미에서 이라크의 쿠웨이트 합병은 단순한 침공으로 규정하기 어렵다.

이라크는 1960년대부터 계속 쿠웨이트 영유권을 주장해 왔고 74년에는 쿠웨이트를 공격하기도 했다.

또한 이와 관련하여 이라크의 집권당인 바아스(Baath : 사회주의 부활당)당의 이념도 고래되야 한다.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을 중심으로 중동 대부분의 국가에 조직체를 둔 바아스당은 「아랍민족의 통일, 사회주의 자주독립」에 원칙을 두고 통일아랍국가의 건설을 이상으로 삼고 있다.

이를 위한 당면 투쟁목표는 아랍민족의 통일을 가로막는 제국주의 세력과 시온주의 세력을 반대하는 투쟁이며 동시에 그들의 하수인인 친서방 정권을 타도하는 투쟁이다.

이번 사태의 원인을 종합적으로 고려해보면 중동 내부의 지역분쟁적 성격이 강하다.

그런데 미국은 왜 무력개입을 하며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는가. 전쟁만이 살 길이다 미국은 중동지역에서 소련영향력이 현저하게 후퇴한 상황에서 그동안 열세에 몰렸던 수세국면을 일거에 역전시키려 하고 있다.

미국은 70년대에 이란을 중심축으로 중동지역에 영향력을 행사해 왔으나 팔레비 왕정이 혁명으로 타도되자 이슬람혁명의 사전방지를 위해 1981년 1월 페르시아만 협력협의회(GCC)를 만들었다.

「GCC」는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바레인, 카타르, 오만, 아랍에미레이트 6개국으로 구성되었지만 사우디와 쿠웨이트가 중심국이었고 나머지는 들러리에 불과했다.

미국은 이들 2개국을 이용하여 중동 지역에서 쇠퇴된 영향력을 유지해 왔는데 이번 이라크의 쿠웨이트 합병은 미국의 핵심고리를 절단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미국의 무력개입은 사우디 아라비아를 이라크로부터 격리시키고 기타 중동국가들을 포섭하기 위한 목적이다.

또 한가지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침체된 미국경제의 활로를 찾으려는 몸부림이다.

미국경제는 3분의 1이 군수산업으로 상시적인 분쟁과 전쟁을 필요로 하나, 신데탕트의 전개와 함께 군축무드가 진행되자 설상가상으로 재정, 무역적자에 시달리는 경제의 골이 더욱 깊어졌다.

미국이 이라크의 평화협상안을 일방적으로 거들떠 보지 않는 이유도 이번 사태를 최소한 장기화시키거나 아니면 무력도발을 통해 군산복합체의 경기를 부흥시키겠다는 의도이다.

아랍국내 반미시위 격화 미국은 군사력 개입의 명분을 찾기 위해 미국깃발이 아닌 유엔깃발을 달고 전쟁을 도발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케야르 유엔 사무총장이 『미국의 사우디 파병은 유엔과 사우디에 의한 공동결정일 뿐 유엔의 이라크 제재와는 구분되어야 한다』고 말했듯이 유엔이 의도하는 평화적 해결을 위한 다국적군과 미국이 자신의 침략성을 은폐하기 위한 다국적군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미국의 침략도발은 예전에 강력한 경쟁자였던 소련이 내부의 경제위기로 인해 서방과 미국의 자본이 절실히 필요하기 때문에 발목이 잡혀있는 상태여서 어떤 형태로든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지금 자기 무덤을 파고 있다.

우선 이미 2배 가까이 폭등한 원유가가 전쟁이 일어날 경우 걷잡을 수 없는 상태로 변해 세계경제를 장기적 침체의 늪으로 몰아갈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더욱 주목되는 것은 아랍권 내부의 문제이다.

현재 아랍진영은 이 문제를 둘러싸고 양분이 되어 있지만, 전쟁이 일어나고 특히 이스라엘이 개입할 경우 미국 뿐만 아니라 사우디 이집트 등의 친미국가 내부에서 격렬한 반미시위와 함께 정권전복의 가망성까지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요르단 등 국내에서 여러 분파로 분열되어 있던 정치세력이 반미전선으로 통일되고 있다.

이는 후세인 대통령이 서방측에 「중동의 히틀러」로 묘사되는 반면 아랍민족에게는 「아랍의 영웅」으로 존경되는 상황을 뒷받침해 준다.

또 한가지 미국의 딜레마는 1백대군에 8년여 전쟁경험을 가진 이라크를 상대로 확실하게 이길 수 있다는 승산이 없다는 것이다.

특히 미국은 공군, 해군력을 중심으로 육군이 압도적으로 열세에 있기 때문이다.

이상의 상황에서 보듯, 미국은 그라나다, 파나마, 리비아 침공때처럼 또 다시 이라크 침략을 시도하고 있다.

이는 미국이 스스로를 자유수호자로 자칭하면서, 수백만 팔레스타인인을 학살하고 추방한 이스라엘을 강력히 지원하는 것과 대조를 보이며, 미국의 본질을 스스로 폭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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