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보는 자가 승리한다" 이승주 "미봉"(彌封)이란 말이 있다.

"두루 미"에 "꿰멜 봉", 두루 얽어맨다는 뜻이다.

바늘 한 땀씩 정성을 들여도 불량품이 나오는 세상인데, 대충 엮어 놓으니 튼튼할 리 없다.

당장의 수고를 덜기 위해 "미래"를 내다보지 못하는 상황, 사람은 현실을 산다고 하지만 그 현실이 편안함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닐 터, 오히려 우리는 미래를 향한 거시적 안목 속에, 순간을 사는지 모른다.

마치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처럼 느릿하지만 올곧은 정신이 완주의 기쁨을 가져오듯, 국가는 그 구성원들에게 한 세기를 위한 뚜렷한 정책을 제시, 개인들에게 "희망"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물론 그 정책 실행 이전 충분한 연구가 뒷받침 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현 정부는 준비된 것은 고사하고, 한 외신에서 지적한 것처럼 "걸음마"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당장 태풍 "매미"가 휩쓸고 간 지금, 재해시설 복구 및 보상을 위해 추가예산을 논하고 있다 하나, 태풍이 보다 강했다던 일본의 피해가 극히 미비한 점을 돌이킬 때, 역시 우리의 사전 대책이 미흡했음을 알 수 있다.

자연재해는 일시적인 것, 다행히 수습할 경제적 여건이 되는 것이 다행이나, 또다시 불어닥친 WTO의 개방 바람 앞에 정부는 이렇다 할 비젼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도하개발 아젠다", 특히 칸쿤에서 논의된 농업정책과 관련, 다자간 무역협정이 결렬되었다는 사실은, 그 자체만으로도 "미래를 위한 방향"을 상실했다는 위험이 있는데, 더구나 10년의 준비기간에도 불구, 이제껏 "단기적 추곡수매 정책"에만 일관해 질적 농업경쟁력을 기르지 못한 현 상황은, 다가올 2006년의 혹독한 개방바람을 맞서기엔 너무도 미약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쌀을 주식으로 하는 민족으로, "농본지대계"를 외치던 선조의 정신 때문인지, 유독 정부는 농업분야에서만큼 "세계화" 조류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무조건 기존의 것, 우리의 것만을 고집한다는 것은 대세(大勢)상 무리이다.

특히 이번 협상에서 EU와 미국이라는 양대 세력에 신진 개발도상국들이 거센 입김을 작용했다는 사실 자체가, 이 개도국둘의 주산업이 "농업"이란 점으로 미루어, 우리 스스로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코너에 몰렸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따라서 물가안정에만 급급해 영세농가까지 포함, 무조건적 보상에 열을 올렸던 지금까지의 농업정책은 더 이상 효력을 발휘할 수 없고, 또 그렇게 되어서도 안된다.

"적자생존", 약한 것은 도태하고 강한 것은 살아남는다.

세계적으로는 1980년대의 "지역보호주의"가 세계 대공황을 낳았고, 국내적으로는 "국내산업보호"가 IMF를 가져왔듯, 농업 분야에서도 강한 구조조정이 이루어져야 생존을 기대할 수 있다.

우선 현 농가수의 절반 이상이 60대 노년층을 중심으로 구성된다는 사실은, 농민 모두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는 정부의 변명과 달리, 장기적으론 별다른 실효성이 없었음을 증명한다.

곧 그만큼 정부예산이 엉뚱한 곳에 낭비되었다는 것. 정부는 농촌 지역의 연령대를 낮추는 일에 힘써야 한다.

연령이 낮아진다는 말은 그만큼 "살만한 여건"이 조성된다는 뜻이며, 실제로 교육, 서비스, 산업의 열악함으로 인해 이농한 사람들이, 현재 도시에서도 뚜렷한 기반을 잡지 못한 "노동자층"을 조성하고 있다는 점이, 사회적 빈곤이 "이동"될 뿐, "제거"되지 못함을 보여준다.

따라서 기존의 회생 불가능한 농가까지 지급되었던 비용은 과감히 다수를 위한 사회 기반시설 조성으로 전환되어야 하고, 이 대책은 얼마간의 "반발"을 감수하면서까지 주민들에게 권고, 설득시켜야 할 근본적 방향이라 본다.

더불어 농업의 특화, 여타 산업과의 연계 여부다.

얼마전 우리의 농가가 일본농가와 함께 인삼 품종개량을 연구, 그 성과로 북미지역에 많은 이윤을 창출했다는 보도는 "쌀"을 넘어, 경제성 있는 작물, 즉 다원화된 작물 재배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이처럼 부가가치가 높은상품을 발견한다는 것도 한 가능성이며, 나아가 이것이 국내수요를 넘어 국외로까지 뻗어갈 수 있도록 홍보전략, 상업자본을 정부가 뒷받침 해 주어야 한다.

그동안 "직접보상"에 소모했던 예산을 이제 "일대 일"의 보상이 아닌, "다수를 위한 일"에 주력함으로써 그 산업으로 인해 확보될 보다 큰 가치에 주목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 실행에서 도태될 다수 농민들은 이 산업을 고도, 분화시키는 과정에 편입시킬 수 있을 것이다.

개인의 일상은 물론이려니와, 국가적 정책에도 하나를 위한 대가는 반드시 존재한다.

하지만 그것이 "대"를 위한 희생이려니와, 나아가 이후 "소"를 위한 정책으로까지 발전할 수 있다면 일시적 잡음은 기꺼이 감수할 일이다.

기존의 정부정책이 "잡음"에만 치우친 "소"를 위한 정책이었기에, 그야말로 "미봉"일 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돌이키자. 협상결렬에 따른 WTO 일괄타결 방식이 최악의 경우엔 "일대 일"협상방식으로 다가올지 모르나, 어떤 기준이 마련되건 우리는 "세계화를 위한 경쟁력"에 초점을 맞추면 된다.

준비된 자에게는 어떤 난관도 두렵지 않은 것처럼, 2006년의 가까운 미래를 위해, 지금부터라도 국민과 정부는 힘겨운 내부 투쟁을 벌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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