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민중항쟁특집] 1년남은 공소시효, 그러나 광주의 외침은 영원하다 5·18은 현재진행형 지난 18일(수) 평소 고적하던 광주 망월동 묘지는 5·18 민중항쟁 영령들의 뜻을 기리기 위해 찾아온 수백명의 국내외 인사·시민·학생들로 붐비고 있었다.

5·18 희생자들과 강경대·이한열 등 수많은 열사들이 묻혀 있는 망월동 5·18 묘역은 2천여명으로 알려진 5·18 당시 희생자수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다.

그 원인은 「광주 곳곳에서 건축을 하려고 땅을 파헤치면 유골이 무더기로 나온다」는 한 시민의 말에서 찾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5·18 묘역 옆에는 14년 전 그날 광주의 모습을 담은 사진들이 전시되어 참배객들의 발못을 붙잡고 있다.

당시 동아일보 기자가 찍었다는 30여장의 사진들은 5·18 관련 사진이라면 으례 연상되는 「머리가 잘려나간 시신, 으깨져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피투성이 얼굴」등 소름끼치는 충격적인 광경은 없었다.

그러나 비무장 상태의 시민을 향해 돌진하는 공수부대의 모스은 그 이상의 공포심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한 것이었다.

『아빠, 저기 일본이야?』『아니, 우리나라야.』『정말 우리나라야?』 아빠 손을 붙들고 사진전을 보던 꼬마가 몇번이나 「우리나라가 맞냐」고 되묻는다.

그러나 우리는 꼬마가 좀더 커서 「5·18 민중항쟁의 진상」에 대해 물을 ㅐ 들려줄 대답이 아직 없다.

김영삼 대통령의 말을 인용해 「시간이 흘러가면 진실은 밝혀지는 거니까 모든 것은 역사의 판단에 맡겨버리자」고 말할 수밖에. 박정희 대통령 암살사건 이후 신군부는 12·12 쿠데타를 통해 정권장악을 시도했다.

그것은 민주를 바라는 온 국민의 저항을 불렀고 그에 대해 신군부는 광주를 택해 학살로써 답했다.

5·6공이 5·18 진상규명을 꺼린 이유는 그 학살의 가해자가 집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현 정부는 어떤가? 현 정부 또한 5·6공과의 야합이라는 정치적 기반 위에서 탄생했기에 5·18이라는 「원죄」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허허, 뭘 알아야 용서를 하제. 누가 뭘 어떻게 했는지도 모르는디 무턱대고 용서하라면 하늘을 용서하란 말이여, 땅을 용서하란 말이여?』김영삼의 민주인사로써의 경력에 진상규명의 희망을 걸어보기도 했던 광주시민들은 이제 정권의 태생적 한계를 인식하는 듯 하다.

그러나 「무조건 용서하고 잊으라」는 말이 못내 안타까운지 답답함을 토로한다.

망월동을 참배한 후 시민들의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5·18 민중항쟁 14주기 기념식 및 국민대회」가 열리고 있는 금남로로 향했다.

금남로는 이미 5만의 인파로 가득 찼고 미처 자리잡지 못한 시민들은 담위에 걸터앉아 있거나 보도에 선 채로 참여하고 있었다.

『여기있는 사람들 다 누가 불러서 온 것이 아니여. 광주 시민으로써 그 때의 분노를 생각하면 참가하지 않을 수가 없제』광주 시민 고제웅씨가 말하는 국민대회 참가이유이다.

5·18 당시 도청에서 열리는 시위에 참가했다는 고씨는 시위도중 계엄군의 총알을 피해 달아났던 사실이 못내 부끄럽다고 한다.

『그 때 맨몸으로 그냥 버티던 사람도 있었는데…』라며 착잡한 표정이다.

서울 사람들이 5·18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싶다는 고씨는 「5·18은 광주가 온 나라를 대신해서 군부독재세력과 싸운 것」이라며 5·18이 광주만의 문제로 축소되는 것을 안타까워 한다.

식순을 모두 마친 대회참가자들은 줄을 지어 미문화원을 거쳐 민자당사로 행진을 시작했다.

길가던 행인들도 자연스레 시위대에 합류하여 「꽃잎처럼 금남로에 뿌려진 너의 붉은 피…」로 시작되는 오월의 노래를 목청껏 부른다.

거리로 나온 광주시민들은 「진상규명·책임자처벌」과 같은 무게로 「수입개방 반대」를 외쳐댔다.

이제 5·18은 단지 과거의 일이 아니라 현존하는 억압에 대한 민중의 저항의 몸짓으로 현재까지도 계속되는 것이다.

14년전 2천여 희생자들은 무엇을 위해 항쟁에 참여했으며 도청을 사수하다 총탄에 쓰러져갔던가? 그들의 진실이 아직 밝혀지지 않았고 그들이 바라던 세상이 아직 오지 않았기에 5·18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이 미완의 혁명의 완결은 살아남은 우리의 몫인 것이다.

「그러나 맞아 죽은 자의 투쟁이 혼자만의 것이 아니었다면/적은/아직 승리한 것이 아니다」 김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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