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제 어떻게 볼 것인가 <1> 폭압적 독재에서 패권적 지배로의 이행과정 50년대 지자제, 친미반공독재정부의 상징조작 보수세력 재정비 통해 92,3년 준비 지자제는 과연 「풀뿌리민주주의」로 한반도에 자리 잡을 것인가. 아니면 민주주의란 미명아래 현 지배세력의 강화로 돌아설 것인가. 현시기,상황에 비추어 본 지자제의 의미와 이해, 그 대응방안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편집자> 차례 1. 현 시기 지자제 실시의 의미 2.각 정당들의 입장과 문제점 3. 지자제 법안과 쟁점사항 4. 갈등 문선유 - 한겨례 사회연구소 자본주의 체제에서 법·제도는 체제유지에 필요한 지배질서를 제도화 하기 위한 체계에 불과하다.

따라서 자본주의 국가가 취하는 계급적 중립성은 대개 지배세력의 입장에 기울어져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 성립기에 나타난 부르조아의 이상인 자유,평등,박애는 전인류의 가치로 치장되어 있기 때문에 실제로 유지되는 법·제도는 항상 이중적인 성격, 즉 계급투쟁의 진전에 따른 피지배세력의 전취물이라는 성격과 이에 대응하는 지배세력의 양보의 산물이라는 성격을 지닌다고 볼 수 있다.

현재 실시를 기다리는 지방자치제도도 예외는 아니다.

3공화국이 등장한 이후 「통일이 될 때까지」유보되었던 지자제를 이제 실시할 수 있게 된 까닭은 민중의 정치역량이 그만큼 성숙했기 때문이고, 다른 한편 독재권력이 폭압적 지배에서 「정치적」지배, 지배세력 전체의 이익-정권유지에 유리하다는 판단때문이다.

이러한 계급대립의 산물이 가시화된 것이 6.29선언이다.

6.29선언이 민중세력의 성과이고 군부파쇼의 자기부정이자 자구책이었다면 부르조아에게는 타협이고 쁘띠부르조아에게는 회유이며 그 밖의 계급들에게는 도전이었다.

현 시기가 기본적으로 6.29선언으로 탄생한 전선의 연장이라면 그 후 일년의 정치적 상황변화도 6.29선언을 낳은 계급관계를 배경으로 한다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선언의 6번째 항목으로 포함되었던 지자제문제는 그 전선의 역동성에 일차적으로 규정받는다.

지방자치제에 관한 호화찬란한 미사여구를 일단 제쳐둔다면 권력의 기능적 배분에 대립하는 권력의 지역적 배문인 지방자치는 계급관계에 매개된 정치적 지배가 국가권력 내에서 표출되는 특정한 양식일 뿐이다.

따라서 부르조아지의 패권이 여전히 관철되는 사회에서 지방자치를 풀뿔 민주주의로서 민주주의의 원천으로 정의하거나 민주주의의 최고의 학교이며 민주주의의 성공을 위한 가장 확실한 보증이라고 정의하는 것은 일면적이다.

엥겔슥 강조한 것처럼 「보통선거권으로 선출된 공무원에 의한 완전한 지자제」가 실현되지 못하고 지자제가 형애화할 경우 그것은 중앙 권력 강화의 수단으로 될것이다.

이점은 한국 현대사에서 지자제의 경험을 살쳐보면 더욱 분명해질 것이다.

자쥬당 정권시절의 지자제는 이승만을 중심으로 한 독재권력이 세력확장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였다.

두 번에 걸친 지자제선거가 모두 지방의회로 하여금 국회내의 야당을 견제하기 위한 정치적 책략으로 이루어졌던 것이다.

1950년대 한국사회의 자유민주주의는 미국의 원조에 기생하는 이승만의 친미반공독재를 폭력적으로 구축, 강화해가는 과정에서 하나의 상징조작에 지나지 않았고 지자제도 그러한 수단의 하나였다.

그후 4.19혁명으로 개정된 지자제도 형식적이긴 마찬가지였다.

정치적 독재로 상징되는 1960면대와 70년대는 종속적 산업화의 시기였다.

이 시기에 종속적 자본축적은 강력한 중앙권력을 요구하였는 바 행정의 능률을 구실로, 또 반공을 구실로 지자제는 설틈이 없었다.

이 20년 동안 한국정치는 한번도 주된 동력이자 피해자였던 피지배 민중을 조직하고 대변할 정치세력은 존재하지 않았으며, 보수양당의 정치구도 속에서 군부독재와 그에 대항하는 민주라는 대림구도는 절차적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와 함께 다음시대의 임무도 이월 되었다.

그러나 군정과 제 3공화국 그리고 유신체제에 이르는 폭압적 정치아래서도 압박이 심해질수록 피지배 계급의 운동은 성장했으며 반독재 민주화 투쟁에서 한국하외의 근본적 변혁을 추구하는 체제변혁운동으로 변화하였다.

5공화국 이후 지자제 문제가 재등장한 것도 이러한 변화의 결과이며, 기본적으로 정치적 필요에 따라 국민의 민주화요구와 자주적 진출을 무마하기 위해서지만 84년,86년 전두환 정권이 지자제 실시를 연명한 것도 이 때문이라고 하겠다.

그런데 여기서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할 점은 6공화국에 들어와서 지자제가 가능하게 된 이유 중의 하나는 그것이 여야간의 타협의 산물이라는 점이다.

지배세력 내부에서 어느 일방도 확실히 주도권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지배집단은 극좌와 극우를 배제한 보수정권의 창출과 의사 보·혁구도를 추사건화나 수서파동이 여·야할것 없이 지배집단의 차기대권고 권력분쟁을 둘러싼 치졸한 권력투쟁이라면 지자제 분리선거는 혀재의 힘의 역관계를 반영한 통과점이었을 것이다.

이제 지자제 선거를 기점으로 한국정치는 본격적인 선거정국으로 나아갈 것이다.

지자제 선거 이후로도 국회의원 선거, 대통령 선거가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은 한국정치가 본격적인 권력재편기에 진입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노태우 대통령이 연두기자회견에서 내치에 치중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한 것도 이와 같은 사실을 염두에 둔것이라 하겠다.

현 집권세력은 지자제를 중간평가로 보고 어떻게든 승리를 쟁취하려 할 것이고, 또 경제적 불안정과 북방외교를 통한 이데올로기 공세를 강화함으로써 보수세력이 결집을 꾀할 것이다.

그래서 지배세력 내부의 교통정리가 지자제를 통해 가능해지면 다시 한번 내각책임제를 거론할 것이고 노재봉 친위돌격내각은 그 선봉대가 될것이다.

보수야당은 지자제를 통해 상대적 안정성을 획득하고 대통령제를 우선으로 하면서도 내각제를 부정하지 않는 선에서 권력분점을 노린것이고 이는 장기적으로 제2의 정계개편으로 실현 될 것이다.

그렇다면 여타의 야당세력은 설 자리를 잃고 군소정당으로 연명하거나 거대 정당에 흡수되는 비운을 경험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극우세력들은 호 시탐탐 기회를 엿보겠고 지자제를 통해 자신들의 처지를 확인하려 하겠지만 권력 지향적인 세력들이 언제나 그렇듯이 제국주의 세력이 손들어 주지 않으면 그것도 헛된 몸부림이 될 것이다.

지자제는 민민세력에게 합법정치전술에 대한 귀중한 교과서로 될것이다.

한편 정치와 돈으로 얼룰진 지자제는 재정자립도 등의 문제로 처음부터 삐걱거릴 테지만 자기 손으로 대표자를 뽑을 수 있다는 프로메테우스의 불을 성취한 민중에게 가냘픈 희망을 제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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