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영균(영문과 교수) 우리는 1968년 이화에서 있었던 한일회담 반대데모를 역력히 기억한다.

그것은 11월 하순의 음산한 날이었다.

수천명의 학생들이 정문앞 다리 건너에 있는 길을 꽉 메우고 있었고 그들 앞에는 수백명의 데모진압대가 철모와 곤봉으로 무장하고 만만치 않은 자세로 서슬이 퍼랬다.

이때나 저때나 데모로 해가지고 해가 오는 세월이지만 그날의 데모는 당시 이대로서 가장 대규모의 것이었다.

그러나 그 데모가 인상적 이었던 이유는 다른데 있었다.

김옥길총장이 6시간 이상 계속되는 데모동안 경찰과 학생들 사이에 아무말 없이 버티고 서있었던 것이다.

우리 교수들도 자연 총장을 에워싸듯 경찰부대와 마주서서 해가 질때까지 서있었다.

총장은 학생들 대열고 쳐들어 올지도 모를 진압대의 공격을 몸소 가로막고 있었던 것이다.

총장의 그 자세는 학생들에게도, 진압대에게도 무언중에 전달되었고 무어라 형언하기 어려운 감격을 불러일으켰다.

그런 가운데 데모는 정연하게 계속되었고 진압대는 우리과 거의 몸이 맞닿을 거리에 서있으면서도 꼼짝하지 않았다.

해가 지고 기온이 급속히 떨어지자 총장은 학생들에게 대강당에 들어갈 것을 종용했다.

학생들은 즉시 순응하였고 우리는 총장을 가운데 대열을 지어 대강당에 들어가 밤을 지새웠다.

학생의 희생을 막으려는 총장의 의지는 관철되었고 학생들은 무사히 새벽에 집에 돌아갈 수 있었다, 그것은 한 리더의 진정이 집단을 움직인 예이다.

70년대에 유신제도를 도입하기 위해 정부가 언론을 탄압하면서 개헌을 서둘었을때 반대하는 많은 사람들이 투옥되었다.

학생들 데모는 연일 계속되었고 그들의 외침은 충분히 공감이 가는 것이었다.

교수들간에도 반대의견을 표명하고 서명운동에 가담하는 이들이 있었다.

문교부는 각대학 총장에게 시한부로 면직시킬 이른바 정치교수명단을 내보냈다.

평소 입바른 소리를 하거나 서명했던 이대 교수들은 자신들의 머리위에 떨어진 운명이 궁금하여 총장에게 문의하였다.

그러나 총장은 종시 그런 명단을 받은 일이 없다고 대답하였다.

총장은 명단을 받았으나 홀로 정부 명령에 불복할 결심을 한것이다.

그래서 학무처장이나 교무위원에게도 명단이 온 사실을 알리지 않은 채 문교부장관에게 면회를 신청했다.

용건을 밝지 않았으나 그 시기에 대학총장이 문교부장관을 만나자고 할 때엔 용건을 하나밖에 있을 수 없었다.

총장은 장관이 면회를 받아들이면 그것이 곧 이쪽의 명령불복을 묵인하겠다는 의사표현이라고 판단했다.

마침내 면회약속을 받아내자 총장은 장관실로 찾아갔다.

장관 얼굴을 보자마자 총장은 손을 내밀며 거두절미 「고맙습니다」하고 장관이 대꾸할 사이도 없이 그 유명한 너털 웃음을 남기고 나와버린것이다.

그는 「고맙습니다」는 말한다미로 선수를 쳐서 지시불복에 대한 장관승인을 받아낸 것이다.

그런 일을 할때의 총장은 정확한 판단과 적절한 타이밍과 과감함 담력으로 밀고 나갔으며 그의 적극성은 자기 아닌 남을 돕기위한 것이었기에 힘차고 당당할 수 있었다.

각오때문이었다.

그것은 또한 공적 생활에서나 사적생활에서나 한결같이 남을 위하는 기본정신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했다.

개인으로서의 총장은 더없이 다정한 분이었다.

그분이 만일에 연애를 했다면 기막힌 애인이 되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 섬세하고 자상한 마음씀은 누구도 흉내낼 수 없었고 그 넘치는 정은 어떠한 것보다고 따뜻했다.

총장의 특이한 점은 그를 대하는 모든 사람이 그에게서 특별한 사랑을 받고 있다고 느끼게 만드는데 있었다.

그것은 마술같은 일이었으나 기교나 가식으로할 수 있는 일은 결코 아니었다.

사람의 크기를 재는 척도를 그가 품을 수 있는 사랑의 깊이라고 한다면 총장은 한없이 큰 인물이었다.

총장이라고 개인적인 고통이라 상심이 없을 수 없었겠건만 사람들은 답답하고 막막한때 모두 그분께 해소하였고 그럼으로써 크게 위로를 받았다.

그분은 총장이나 장관의 지위에 오르셨으면서도 언제나 소탈한 촌부로 처신하였다.

그 소탈함은 그분이 애용한 고무신이단적으로 상징한다.

그분은 공정 외출이 아닐떼에는 언제나 하얀 남자고무신을 신었다.

그만큼 편한 신발이 없다는 것이었으나 그것은 바로 서민과 함께 호흡하며 사는 구수한 인품을 구체적으로 반영하는 것이기도 했다.

우리는 그러한 그분의 모든면을 한없이 사랑하고 그리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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