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가 열리는 시끌벅적한 교정, 본관 옆 김활란 동상 뒷편의 아담한 숲 속에서는 시화전이 열리고 있었다. 중앙동아리 ‘이화문학회’와 인문대문학창작비평동아리 ‘글지이’는 각각 개성있는 모습으로 시들을 전시해 지나가는 이들의 눈길을 끌었다.

이화문학회는 매년 공통 주제와 자유 주제의 창작시로 시화전을 연다. 개인마다 같은 대상에 대해서 다르게 생각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기 때문이다. 특히 ‘냄새’를 공통주제로 한 이번 시화전은 빨랫줄에 걸어 놓은 티셔츠에 시를 적어 시각적 재미를 더했다. ‘냄새’를 제거하는 방법으로 빨래가 생각나 빨랫감을 널어놓은 모습을 연출한 것이다. 그 중 ‘저녁 밥상에의 냄새’는 저녁식사라는 일상적 소재를 끌어와 작가의 개성있는 ‘냄새’를 유감없이 그려냈다.

< 냄 새 > - 저녁 밥상에의 냄새- 하지혜

낮의 호흡을 고르는 밤바다 속에 눈알을 치켜 뜬 저 갈치 몸서리가,

회오리를 일으켰던 순간 지름 7센치의 원통 그물에 바다가 갇혔다.

호흡곤란, 정신착란, 벗겨진 은빛깔 살결에 포비돈요오드를 어서!

촘촘한 망사 스타킹에 대가리를 디밀고 고를 내버릴 것을.

결국 까만 비닐봉다리를 타고 도착한 도마 위 먼저 간 동족들의 비린내가 밴

형장 내려치는 칼날이 희번뜩 번뜩 허리통이 두 동강 나는 순간

잡아채 온 늙은 여자의 머리통을 삼켜버릴 것을.

치직치직 ♨ 비린내는 고소한 갈치구이가 되었다

분리수거 된 음식물쓰레기 통에서 갈치 대가리가 노려보는 가운데

화기애애 저녁만찬이 시작되는 중.

 

“저녁 냄새를 생각하다 보니 밥상이 떠올랐고 유쾌한 저녁 밥상에 비극적인 운명으로 올라온 갈치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시를 지은 하지혜(국문·2)씨의 말이다.

하지혜씨는 “이 시를 쓰면서 죽음의 상황에서 치열했던 그 갈치의 몸부림이 일상에 있는 나의 모습은 아닐까 생각했다”며 “나의 의도보다는 읽는 이의 느낌과 감정에 따라 달라지는 감성에 해석을 맡기고 싶다”고 덧붙였다.

시라는 빨래가 널려 있는 풍경을 지나니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의자 위에 전시된 시들이 보인다. 매년 같은 장소에서 시화전을 여는 글지이의 시화전이다. 글지이는 시화전에 잔잔하고 분위기 있는 음악을 튼다. 그렇다고 꼭 클래식을 들려주는 것은 아니고 영화 ‘아멜리엷·‘냉정과 열정사이’ OST 처럼 시에 잘 어울릴 수 있는 음악을 선곡한다. 시끌벅적한 축제 속에서 여기서만큼은 차분히 시를 즐길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하고 싶기 때문이다.

 

또 글지이는 시화전을 열기 한달 전 쯤부터 각자 2∼3편의 시를 써 와 서로 평을 나누는 합평회를 갖는다. 그 후 평이 좋거나 자신이 꼭 보여주고 싶은 시를 엄선해 시화전을 연다.

그 중 이중섭씨의 그림엽서에서 모티브를 따와 그림을 그렸다는 시가 눈에 띈다.

< 봄 그 후.. > 강지희

봄은 갔는데 올 것이 오지 않았다

시급한 바람 한 줄기가 어디선가 새어나와 전깃줄을 흔들었다

그 전깃줄에 대롱대는 목숨인 우리네도 순간, 술렁거렸다

바람이 내려와 속눈썹 위에 앉아 다리를 흔들었다

목이 터져라 부를 민중가요도 사납게 밀치는 전경들도 매캐한 연기도 없는데

손가락 끝엔 물방울이 매달렸다

우리 청춘은 오지 않던 그 것 마냥 유예되었다

 

강지희(인과·1)씨는 “공통의 목표가 있었던 예전과는 달리 지금의 대학생들은 중심없이 갈피를 못 잡고 있다”며 “여름이 오지 않는 것처럼 청춘도 오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이들이 매년 시화전을 열며 느끼는 점은 다양하다.

이화문학회 정가영(의학·1)씨는 “신입생때는 내 시를 내놓는 게 부끄러웠지만 해가 지날수록 이화인이나 나나 생각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 좀 더 마음이 편해진다 ”고 말한다.

글지이 회장 오가을(불문·4)씨는 “합평회에서 안 좋은 평가를 받은 시가 시화전에서는 좋은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며 “시는 주관적인 감성으로 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한다.

28일(금)까지 열릴 예정이었던 시화전은 내리는 비로 인해 마지막 날 열리지 못했다. 시끌벅적한 장터가 가득 들어선 축제 속에서 차분히 문학을 즐길 수 있는 시화전. 날아가 버린 하루와 함께 비워진 그 공간엔 미처 시를 보지 못한 이들의 아쉬움이 남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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