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고 화려한 간판, 도시미관 해치고 제 역할도 못해… 정비통해 간판문화 다시 세워야

우리 학교 앞은 대한민국에 첫 발을 들여놓는 독특하고 개성있는 가게들이 몰려드는 곳이다.

따라서 가게들의 다양성 만큼이나 그들의 간판 역시 휘황찬란 어지러울 지경이다.

건물에 빽빽하게 자리한 색색의 간판들이 너도 나도 ‘나 좀 봐요’하고 아우성 치고 있으니 행인들은 정신이 아찔하다.

도대체 어느 건물 몇 층에 붙어 있는 상가인지 분간이나 할 수 있을까. 지난 2월 인사미술공간에서 ‘간판은 아트다’ 전시회를 연 박상희 작가는 간판에 대해 “매일매일 보고 싶지 않아도 볼 수 밖에 없는 자연스런 하나의 그림”이라며 “하지만 요즘에는 자신들의 상가에 대한 소리없는 소개가 아닌 상인들의 경쟁심리가 반영돼 있다”고 덧붙인다.

그 말대로 간판은 매일 학교 앞 거리를 지나야 하는 이화인들 뿐 아니라 복잡한 도시 공간 속을 활보하는 사람들이 언제 어디서나 보는 것이 됐다.

그러나 지나는 이들의 시선을 붙잡기 위해 ‘튀어보이려’ 요란하게 치장한 간판들을 그림이라 하기엔 무리가 있다.

상점 주인들이 추구한다는 튀는 간판에서 ‘튄다’의 개념을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학생들이 시끄럽게 떠드는 강의실에서 선생님이 아무말도 하지 않으면 오히려 조용해진다.

즉, 단순히 크고 화려한 것이 튀는 것이 아니라 다른 간판들과 차별이 있어야 눈에 띄는 법이다.

남들이 빨간색의 튀는 간판을 쓰면 나 역시 빨간색을 쓰는 것이 아니라 중간톤의 차분한 색깔을 쓰는 것이 오히려 튈 수 있는 것이다.

이에 우리 학교 이영희(시각디자인 전공)교수는 “너무 유사성만 강조하면 분별이 안 되고 또 차별성만 강조하면 어지럽다”며 “같은 회색 바탕이라도 노란끼가 있는 회색에는 노락색으로 글씨를 쓰고 파란끼가 있는 회색에는 파란색 글씨를 쓰는 등 비슷하면서도 다르게 하는 것도 좋다”고 조언한다.

외국의 경우 원색이 아닌 낮은 톤의 색상을 이용해 간판을 제작하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개별적인 가게의 기능보다는 도시전체의 미관을 더 고려해 건물 자체에 일정한 틀을 만들어 간판을 정리한다.

우리 학교 앞 홍차전문점 ‘트리니티’를 운영하는 이윤정씨는 상업적인 간판과 차별을 두기 위해 간판을 직접 제작했는데 이 간판은 크기도 작고 단조로운 갈색 톤이지만 가게의 인테리어와 어울려 지나가는 이들의 시선을 끈다.

도시의 분위기를 주도할 수 있고 그 도시 속 문화도 될 수 있는 간판들이 오히려 도시 속 공해가 되고 있는 데에는 관리 소홀이 큰 원인이다.

이에 각 구청에서는 옥외광고물 관련법에 의해 간판에 대한 제재를 가하고 있다.

서대문구의 경우 원색을 지양하고 빨강·검정·노랑을 50% 미만으로 사용하게 하는 등 간판의 색깔이나 크기에 제한을 두고 이를 어길시에는 시정명령을 내리거나 벌금을 부과하기도 한다.

한편 서울시는 환경개선사업의 일환으로 우리 학교 앞도 신촌일대와 함께 재정비 할 예정이다.

서대문구청 도시개발과의 노만규씨는 “내년부터 전신주를 지하로 넣고 간판을 정리하는 등 도시미관을 위한 계획 방향을 잡고 있는 중”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런 법적 제재가 어느 정도의 효과를 불러 온다하더라도 더 중요한 것은 간판을 보고 그 상점을 이용하는 이들의 자율적인 움직임이다.

우리 학교 앞 거리 역시 이화인들이 자발적으로 학교 앞 상인들에게 거리 꾸미기를 제안하며 관심을 가질 때, 비로소 벌금이 무서워 잠시 반짝하는 간판정리가 아닌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아름다운 거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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