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두덩을 열쇠로 쑤셔 열심히 쌍꺼풀을 만드는 선경은 취업을 앞둔 상고 3학년이다.

학교에서는 취업을 위해 몸매관리, 외모관리를 할 것을 요구한다.

이에 아이들은 불만을 토로하면서도 열성적으로 외모관리에 매달린다.

무게가 많이 나가 담임에게 걱정되는 아이로 꼽힌 선경도 이에 휩쓸려 자신을 고치기 위해 노력한다.

이러한 그녀의 모습은 코믹하게 그려지나 웃고 나면 찝찌름한 무언가가 남는다.

이 영화의 웃기는 요소들이 교사부터 면접관, 아이들에까지 파고든 외모지상주의로부터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호박을 배에 얹고 호흡운동을 하는 선경의 언니가 그러하다.

또한 그것을 보고 웃는 나도 이미 이런 풍조에 물들어 있다.

사원을 채용한답시고 연 면접자리에서 면접관들은 여학생들의 능력은 제쳐두고 외모에만 관심있어 한다.

그리고 선경은 그들에게 잘 보이기 위한 쌍꺼풀 수술비 마련 때문에 단란주점의 접대부로 일하기 시작한다.

수술을 하면 취업이 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면접이 끝난 후 면접관들은 예쁜 접대부 ‘언니’들과 놀기 위해 단란주점을 찾고 고등학생들은 더 예뻐지려 접대부의 길로 나서는 악순환의 반복. 지금 사회는 이렇게 모순된 권력구조 속에서 그릇된 가치 추구를 반복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깊은 골을 패이게 한다.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비판은 예전부터 있어 왔고 주체적인 인간이 바람직하다는 사실은 누구나 안다.

‘자기만의 미의 기준을 찾자’ 라는 당연한 명제를 여성 인권을 위한 이 영화에서 다시 봄으로써 우리는 아직도 이것이 현실에서 실현되고 있지 않음을 알게 된다.

구체적 행동이 따르지 않는 단순한 앎에는 힘이 없다.

여성의 인권을 위한 외침의 내용도 지난날과 별로 달라진게 없다.

우리는 고착화 되어가는 사회의 관습이 잘못된 것임을 알면서도 고치지 못하고 쳇바퀴를 돌고있는 것이다.

임순례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외모의 기준을 자기 자신이 가지고 있으면 그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

자기 확신이 없는 요즘 아이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고 싶다”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누구나 아는 이 시대의 문제는 오히려 우리를 자극하지 못한다.

이렇듯 타성에 젖을 때 조금 더 자신 내부로 고개를 돌린 채 문제를 바라 본다면 어떨까. ‘무관심에서 앎을 끌어낸다’는 말이 있다.

이는 스스로가 외부조건에 무관심해짐으로써 초월해질 때 자아를 덮고 있던 껍질이 한꺼풀씩 벗겨져 온전한 자신을 알게 된다는 말이다.

사회에 지나치게 자신을 맞추려 하기보다 스스로의 가치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갖자. 무작정 사회흐름에 휩쓸려 가는 사람만 존재한다면 세상은 계속 타성으로 굳어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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