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창 관객몰이에 성공하고 있는 이정향 감독의 영화 ‘집으로...’를 보러갔었다.

개봉하기 전부터 ‘꼭 봐야겠다’고 마음 먹었었는데,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는 도시아이와 시골할머니가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라는 설정 자체가 흥미로워 보였기 때문이었고 둘째는 이 영화 홍보물의 맨 끝에 잠깐 비친 ‘이 땅의 모든 외할머니들께 바칩니다’라는 감독의 헌사가 마음 한 구석에 선명하게 각인돼 있었기 때문이다.

외할머니. 그러니까 엄마의 엄마. 언제나 든든하게 날 지켜주지만 정작 중요한 일에 있어서는 아빠에 밀려 2인자의 위치로 밀려 나곤 하는 엄마. 그러기에 이런 약한(?) 엄마의 엄마인 외할머니는 줄곧 우리의 화두에서 저 멀리만큼 비켜나 있는 것이 당연한양 인식되곤 했다.

그래서 여성 중에서도 소외된 여성 그룹의 한 부류인 외할머니라는 존재를 여성 감독의 시각으로 풀어냈다고 ‘선전되는’ 이 영화를 보러 가는 내내 난 외할머니의 목소리가 어떻게 들려올까를 이리저리 상상해 보느라 마음이 분주했다.

그런데 한 시간 반 내내 나는 갑갑하리만큼 외할머니의 목소리를 들을 수가 없었다.

그저 ‘이정향 감독이 외할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는 손녀딸이기만 했구나, 한 번도 외할머니인 적은 없었구나’하는 생각만이 맴돌 뿐이었다.

영화는 도시아이 상우가 외할머니의 사랑을 이해하게 되는 과정을 그리겠다는 계획을 시작하자마자 본격적으로 풀어 나간다.

그래서 영화의 초점은 처음부터 끝까지 상우의 눈으로 본 외할머니에게만 맞춰져 있고 따라서 할머니가 느끼는 상우에 대한 느낌은 완전히 배제되고 만다.

가나초콜릿을 한 번도 보지 못한 할머니의 눈에는 초콜릿과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을 찾는 상우가 이상하게 비칠 수도 있고, 또 7살짜리 손자가 당신더러 ‘벙어리’니 ‘병신’이라고 할 때 가슴이 찢어지듯 슬프거나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외할머니는 싫은 내색 한 번 안하고 이 모든 것을 묵묵히 받아주며 언제나 무조건적인 사랑과 희생만을 베푸는 존재로 그려지고 있었다.

지금껏 주목받지 못했던 외할머니의 존재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고 그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가겠다는 감독의 시도 자체는 충분히 높이 살 만하다.

그러나 영화 ‘집으로...’에서 내가 보고 싶었던 것은 모성이라는 이데올로기로 온몸을 치장한,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풀기만 하는 비현실적 외할머니가 아니었다.

오히려 나는 인간 외할머니, 그러니까 상우같은 개구쟁이 손자가 귀엽기도 하지만 때로는 손자의 무례함과 버르장머리 없는 행동에 짜증을 내기도 하고 역성도 낼 줄 아는 외할머니 자신의 생생한 목소리가 듣고 싶었던 것이다.

조폭영화가 활개를 치던 때에 비하면 그래도 ‘집으로...’의 성공은 한국 영화계에 괜찮은 수확이라고 애써 위로해 보기도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2% 부족하다는 아쉬움만은 가시질 않는다.

손자가 바라본 외할머니가 아닌 같은 여성의 눈으로 외할머니를 바라보고 그녀의 목소리를 진솔하게 담아낸 영화가 보고 싶다.

그런 영화에 ‘이 땅의 외할머니들께 바칩니다’란 헌사를 붙일 때 그것이 더욱 의미심장하게 빛을 발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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