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뮤직비디오 등 감동 위한 ‘죽음’ 설정…현실 상품화 우려 지적돼

‘절망의 화가’ 뭉크는 스스로를 가리켜 요람에서부터 죽음을 안 사람이라고 말하곤 했다.

그가 가진 유년 시절의 어두운 기억은 평생 ‘죽음’을 작품 소재로 택하게 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뼈밖에 남지 않은 사람이 절규하는 작품 ‘절규’나 죽음을 상징하는 해골과 소녀가 열정적으로 키스를 하는 ‘죽음과 소녀’를 통해 강렬하게 드러난다.

이와 같이 세기말적 증후군이 나타난 19세기말을 살던 뭉크가 그린 작품들은 암울한 당대 사회를 반영한 것이었으나 21세기초인 현재도 죽음의 문제는 낯설지 않다.

한 예로, 최근 문제시되고 있는 자살사이트는 죽음의 사회적인 인식을 반영한다.

죽음을 ‘선택’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있는 이같은 경향은 대중문화에서 하나의 ‘이미지’ 코드로 나타나고 있다.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에서는 과거 사랑했던 연인의 모습을 동성인 제자에게서 발견한 한 남자가 이룰 수 없는 사랑을 이루기 위해 ‘자살’을 한다.

여기에서 죽음의 모티브는 불가능할 것 같은 사랑을 가능케 하고 나아가 순수한 사랑의 감동까지 이끌어내는 일거양득의 역할을 하고 있다.

대중예술평론가 이영미씨는 계간지 「사회비평」의 2001년 봄호 속 ‘사랑의 신화, 죽음의 유혹’에서 “현실에서 쉽게 경험하기 힘든 죽음은 영화 속에서 비현실적이고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며 냉혹한 현실의 판단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한다”고 말한다.

병으로 죽은 남편으로부터 편지를 받는다는 영화 ‘편지’의 죽음의 이미지도 실제로 불가능한 일을 관객이 현실로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영원한 사랑의 존재를 믿게 하는 장치로서 쓰였다.

영상세대인 10·20대를 겨냥해 만들어지는 뮤직비디오에서도 이같은 방식이 쓰이고 있다.

특히 신승훈의 ‘사랑해도 헤어질 수 있다면’ 등의 발라드 뮤직비디오에서 전형적인 죽음의 이미지가 나타난다.

애인의 죽음을 눈 앞에 두고 손 쓸 수 없어 안타까워하는 주인공의 모습이나 애틋한 소년·소녀의 순정도 결국은 한 사람의 죽음으로 끝남으로써 슬픔의 감정을 극대화시킨다.

서울대 권보드래 강사(국어국문학 전공)는 ‘존재의 극한에 있을 때만이 자신의 존재의 의미를 알 수 있다’는 하이데거의 말을 인용하며 “견뎌내기 힘든 슬픔이나 죽음이라는 극한은 독자나 관객이 작품의 본질적인 의미를 쉽게 깨닫게 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책 속에서의 죽음의 이미지는 예전부터 널리 쓰였던 방식이지만 사회적인 분위기와 맞물려 담론을 형성하고 있다.

김열규씨의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의 경우 한국인의 고유한 정신문화와 연결지어 한국인의 죽음론을 제시했다.

최근 출간된 소설가 조경란씨의 중단편모음집 「코끼리를 찾아서」는 유난히 자살과 죽음, 세상을 떠도는 환영들의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애인의 급작스런 죽음으로 자살을 기도한 조카딸의 병상을 지키는 이모의 시선으로 서술되는 ‘동시에’나 옥탑방에서 홀로 사는 주인공이 자살한 할머니, 죽은 고모와 삼촌의 기척을 느끼는 ‘코끼리를 찾아서’ 등은 단순히 ‘죽었다’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독자들이 죽음 너머의 세계까지 바라보게 만든다.

하지만 뮤직비디오나 영화 등 대중문화 장르 속에서 감동을 위한 ‘장치’로 죽음이 자주 이용되면서 죽음이란 무거운 화두가 가볍게 다뤄지는 것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소설가 조경란씨는 “요즘 죽음이 현실 상품화되는 경향이 있다”며 “죽음에 관한 이야기는 생각하는 시간을 거치면서 성숙하게 다뤄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뭉크는 죽음에 대한 공포에 시달리면서 금방이라도 기괴한 비명을 지르며 캔버스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은 죽음의 상들을 그렸지만, 그만의 개성이었던 인간의 근원적이고 고조된 감정의 표현은 당시 표현주의 화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현재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대중문화 속에서 나타나는 죽음의 코드도 일상과 무관하다고 생각하기 쉬운 ‘죽음’을 한 번쯤 깊이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던져준다는 데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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