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힉교 앞이 이렇게 복잡하다니! 다 너네 학교 사람들이야?”“E: 야! 다 고삐리들이 옷 사고 신발 사로 온거야”“A: 휴∼너네 학교 앞 걸으면 보이는게 죄 미용실에 옷에 화장품이니 안 사고는 못 베기겠다.

”“E: 아니야∼힉겨 안은 달라. 이걸 뭐 우리학교가 만들었어?” × × × 당신은 오늘도 이대 앞을 부정하는가? 이대 앞에서 옷을 사고 커피를 마시며 거리를 늘 서성이면서 유동‘이대 앞이 이화의 것이냐’는 물음에는 ‘그렇지 않다’고 말해왔던 것은 아닌지.“학교 앞의 상업화에 저항하면서도 바로 그곳에서 생활을 할 수 밖에 없다는 점이야말로 이화인이 지닐 수 밖에 없는 모순”이라는 문화평론가 안이영노씨의 말처럼 이대 앞 문제는 오랜 시간동안 이화인들에게는 딜레마로 남아있다.

학교 앞을 걷다보면 유혹의 신호를 보내는 쇼윈도 안의 다양한 물건들, 티켓 아줌마들의 귀찮은 손길은 그렇다 치더라도 등교길에는 스타벅스에서 커피 한 잔을 사먹어야 할 것 같은 느낌. 우리 무의식은 어느새 이대 앞이 지배하는 것은 아닐까? 이대 앞 상업화 문제는 그러나 과거에도 늘 있던 문제였다.

60년대 이화 앞에도 수십 개의 양장점이 있었고 구두방, 화장품 가게들이 존재했다.

‘이대 앞에는 양장점이 100개, 서점이 하나’라는 노래가사마저 유행할 만큼 이대 앞은 관심과 이슈의 대상이었다.

지금과 다른 점이라면 이화 100년사를 다룬「한가람 봄바람에」이라는 책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60∼70년대 이화인들은 주체적으로 모여 이화만이 개성있는 문화를 만들어 나갔다는 것이다.

류철균 교수(국어국문학 전공)는“히와 앞의‘다락방’같은 공간은 이화의 특성을 잘 드러내주는 곳”이라며“과거처럼 이화인들이 몇몇 상업공간들이라도 변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대 앞 공간의 상업화 현상이 이렇게 과부화된 원인은 무엇일거? 이에 대해 허라금 교수(여성학 전공)는“‘이대’가 지니고 있는 사회적 이미지와 상업성의 두 축이 맞물려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해낼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고등 교육을 받고 있는 젊은 여성’이라는 이대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이‘이곳에 와서 물건을 사면 나의 욕구와 취향이 이중으로 만족될 수 있다’는 식의 확산 효과를 일으키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이런 점도 딜레마 안에서 얽고 얽히는 관계 아래 성립되는 것으로서 이화가‘여대’라는 특수성을 하나의 요인으로 손꼽는 이들도 있다.

이 점에서 이동연씨는‘여대’라는 특수성을 들어 우리학교의 환경운동의 유일성을 이야기한다.

“권력적인 남성중심의 편견에 저항하는 정화세력으로서 볼 수 있다”고 말하는 것. 한편 안이영노씨 역시“이화전통을 지키다는 것은 훼손으로부터 상대적으로 강하게 지켜내고자 하는‘처녀막 보존의 원리’와도 만나는 점이 있다”는 무의식의 세계까지 언급하는 특이한 논리도 편다.

결국 이러한 논리가 나오는 과정은 곧 우리와 이화 앞이 무관하지 않다는 것에 대한 역설인 셈이다.

이에 대해 문화평론가 아이영노씨는 인간과 삶과 공간의 관계를 통해“인간의 삶을 하루 24시간을 소비하는 과정으로 보았을때 8시간 넘는 시간을 보내는 학교 앞 환경은 ‘삶의 질 향상’의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공간”이라고 설명한다.

또한 그는 “특히 신촌의 연대나 서강대는 진행한 적 없는 운동을 이화여대만이 벌여왔다”며 이대안에서는 충분히 문화적인 자생력을 발견할 수 있다“고 긍정적인 의견을 전한다.

즉 여가를 보내는 장소에 대해 적극적으로 고민하는‘주민권’을 행사함으로써 진정한 이대 앞의 주인이 될 숭 있다는 것이다.

한편 문화평론가 이동연씨는 “이화 앞의 권리를 위해선 지역 주민으로서의 의무 역시 지켜나가야한다”며“학교의 대동제나 단대행사등의 즐거운 축제 등을 통해 학교가 지여궂민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문화의 장 역활을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이화인들이 62년 불탔던 이화서림을 도운 일 부터 80년대 호객행위를 벌인 분식점 불매운동 최근의 수요피켓 시위등을 진행해 오고 있지 않느냐는 것이 그의 말이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바로 당장 밀리오레가 생기느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설령 자본이 침투한다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이화 앞의 이화인의 삶의 공간으로 인식하고 내가 주체적으로 학교 앞의 공간에 개입하는 노력들이 중요한 것이다.

바로 이 안에서 이대와 이대 앞 그리고 내 삶을 유기적으로 끌어들이는 시선, 내 일상의 공간인 이대 앞으로 끌어안을 수 있는 가능성은 어쩌면 바로 우리 안에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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