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아로스타미의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에서는 친구의 노트를 우연히 가져가 그것을 돌려주기 위해 해가 뉘엿뉘엿 지는 저녁 내내 길을 헤매며 친구의 집을 찾아가는 소년이 나온다.

공책이 없어 숙제를 못할 친구의 숙제를 대신하는 친구. 그리고 내 친구의 공책이 바람에 넘어갈 때 슬며시 드러나는 하나의 꽃잎. 이것이야말로 소년의 눈에 비친 삶의 진실을 어떤 극적인 영상보다 잘 잡아내는 것이 아닌가. 이처럼 가장 극적인 영화는 현실이며 이런 현실이야말로 가장 극적인 영화다.

제4회 서울국제다큐영상제가 22일(금)∼25일(월) ‘느낌과 나눔’이라는 주제로 관객들과 만났다.

흔히 다큐멘터러라고 하면 딱딱한 나래니터의 설명에 이야기를 주입받는 듯한 인상이 들기 십상. 사회의 왜곡된 면을 파헤치는 무겁고 사회 고발적인 작품으로 다큐에 대한 시선을 한정했다면 이제는 그런 편견을 깨뜨려야 할 때다.

심사위원 조재흥 감독은 “다큐멘터리가 극영화보다 진실에 접근하는 확률이 높은 것이지 극영화는 허구, 다큐는 진실이란 식으로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면 안된다”고 말한다.

“평범한 일상을 반영하는 작품들이 많이 늘어났다”는 다큐멘터리 프로그래머 김새날씨의 설명처럼 영상제에서 상영된 다큐멘터리들은 이제껏 너무 멀게 느껴졌었던 다큐의 매력을 일상을 끌어안은 재미를 통해 대중과 함께 하려는 노력을 보여주었다.

현실 깊숙이 카메라를 들이댄 다큐멘터리 작품들은 4대째에 걸친 비극적인 가족사를 담아내기도 하고 거식증에 걸린 여성이 겪는 육체와의 갈들을 비추기도 한다.

자신의 몸이 견딜 수 없이 뚱뚱하다고 생각한 이후 거식증에 걸린 상황을 드러낸 작품 ‘빈집’에는 늦은 오후 전화 한통 걸려오는 곳 없이 하루종일 거울을 보며 불어난 살을 점검하는 모습이 냉정하리만큼 솔직하게 표현됐다.

늦은 밤 배고픔을 참지 못해 결국은 온집안을 뒤져 과자 한입을 베어먹는 순간은 이것이 매일 매일 우리 여자들이 마주하기도 하는 현실이기에 더 극적으로 다가온다.

이처럼 이번 축제에서 상영된 영화들은 인간의 삶을 한 단어안에 집어넣을 수 없는 것과 마참가지로 삶의 일상을 왜곡없이 솔직한 시선으로 투영해내고 있다.

조재홍 감독은 “숨겨져 있는 것을 드러내거나 권위의 틀을 뒤집어볼 수 있다는데 다큐의 매력을 느꼈다”며 다쿠멘터리만의 미학을 이야기 한다.

너무나 가까운 곳에서 나의 언니, 남자친구, 옆집 아저씨와 하루를 함께하는 득한 느낌을 주는 다큐멘터리는 내 일상의 가려진 곳과의 말걸기를 시도하는 밀도 있는 방식인 것이다.

드러막가 예쁘게 화장을 하고 옷을 입히고 스토리를 풍성하게 덧붙히는 ‘+의 매체’라면 다큐멘터리는 ‘-의 매체’라고 할 수 있다.

즉, 화장의 껍질을 벗기고 꾸며낸 감정의 잔상들을 던져버리고 자신의 뼈대에 가깝게 하나씩 버리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삶의 진실에 있는 그대로 다가서려고 하는 다큐멘터리의 미학이 보인다.

인간이 갖고 있는 욕망, 소망, 저주를 있는 그대로 풀어내는 것은 때론 부조리한 인생을 가공하는 기술보다는 상처가 훤히 드러나는 현실적인 화면, 척박한 공기의 흐름이 필요한 것이다.

다큐멘터리가 우리에게 짙은 농도로 다가오는 것은 우리가 허구의 드라마를 보고 감동하는 것은 나와 관련되 어떤 한 부분이 나를 드러내고, 개인과 시대의 아픔과 기쁨을 공유하는 부분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지 영화 배우가 눈부시게 멋지기 때문은 아닌 것이다.

지금 이 순간 어디선가 일어나고 있는 현실을 카메라에 투영시키는 다큐멘터리. 여우가 어린왕자를 만났고 길들여졌기에 어린왕자의 황금빛 머리털을 닮은 밀밭을 가심에 간직할 수 있었듯, 진정 우리과 관계한 것을 담아낸 것만이 우리와 절실하게 소통할 수 있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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