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춘화」(에이엔에이 출판)를 읽고

조선후기의 대표적인 풍속화가라고 할 수 있는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의 작품으로 전해지는 춘화와 현대의 인물화가 최우석(1899∼1965)의 춘화 작품들이 한 권의 책으로 엮어져 나왔다.

지금까지의 조선시대 춘화 자료집은 특정부위를 가리거나, 기리지 않았더라도 오직 몇 개의 작품만으 ㄹ제시하고, 대개는 1996년에 호암미술관의 춘화「영인본」(도서출판 도화서)처럼 비매품으로 처리되었으므로 일반 대중들이 춘화를 제대로 감상하기란 쉽지 않았다.

「한국의 춘화」는 김홍도, 신윤복, 최우석의 작품으로 전해지는 각각 10점씩 총 30점의 춘화를 책 한권으로 볼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의의가 있다.

또한 조선후기의 성풍속도 뿐만 아니라 암각화, 신라토우, 고려 청자와 동경 등에 보이는 한국미술사 속의 조형적인 성 표현을 이애하기 쉽게 정리해 놓았고, 작품에 짧막한 작품해설을 덧붙여서 독자의 이해를 돕고 있다.

우리 나라에서 춘화는 이미 오래전부터 존재해왔지만 춘화가 널리 그려진 것은 조선 후기부터였다.

즉 영정조 시애의 정치·경제적 안정기에 중인층이 새로운 부유층으로 대두되고, 명말 호색문화가 유입됨녀서 지대적 조류를 타고 춘화가 보급되기 시작한것이다.

김홍도, 신윤복 그리고 최우석의 것으로 전해지는 이 성풍속도는 당시의 성문화를 알 수 있게 해주고, 이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지만 필자는 젠더론의 입장에서 잠시 살펴보고자 한다.

젠더론의 측면에서 보면 춘화 중 일부 변태적인 행위를 그린 그림을 제외하면 대개의 여성인물은 그림의 감상자를 포함한 남성들에게 손을 뻗으면 만질 수 있을 것 같은, 남성의 성적 욕망을 도발하는 하나의 대상으로 그려져 있다.

또한 이 책에서도 보이듯이 한 두 작품을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이 작품들이 남성의 성기는 측면에서 바라보고 그리거나 부분적으로 암시한다.

그러나 여성의 음부는 그림의 감상자들을 향해서 보다 정면향으로‘보여주기 위한’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것은 이러한 성풍속도의 새로운 수요층으로 부상했던 당시의 중인계층들 즉, 그림 속 남성 이외의 또 다른 남성이 주인공들의 성희 장면과 여성의 신체를 마음껏(?) 감상할 수 있도록 의도된 것이다.

이와 같이 여성은 보여주기 위한 성의 대상으로 그려졌기 때문에 인물의 얼굴 또한 여성 개개인의 개성을 그렸다기 보다는 무표정하고 몇 가지로 양식화된 전형적인 이미지로 반복되고 있다.

육체를 표현하는데 있어서도 보다 강렬하고 진항 황갈색으로 남성의 육체를 표현했던 것과는 달리 여성은 이와 확실하게 구분되게 부드러운 흰 살결로 표현하였다.

이것은 그림의 감상자인 남성이 그림에 몰입하여 자신 또한 성적 욕망을 ‘도발’할 수 있도록 남성을 그릴 때 보다 현실에 가까운 사실적인 표현을 의도한 것이라고 할 수가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전체적으로 하얀 여성의 몸은 그러한 현실적이고 강렬한 색 옆에‘놓여져’있음으로써 수동적인 모습으로 대상화되어 나타난다.

흥미로운 것은 남성중심주의적인 욕망에 부응하는 신체의 이러한 색채 대비와 무표정한 여인의 얼굴 등이 일본의 춘화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흰 살결을 가진 여성, 그리고 남성의 요구에 반향하지 않고 응할 수 있는 수동적인 여성의 모습을 대상화시켜 하나의 이상적인 이미지를 만들어 낸것은 중국의 춘화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난다.

이처럼 세나라가 젠더론의 측면에서는 유사성이 있지만 표현 양상에 있어서는 사뭇 다르다.

중국의 춘화는 주로 다양한 성교체위를 과장됨 없이 오히려 축소된 이미지로 정교하게 묘사하였고 일본의 경우는 성기와 음모 부분을 비현실적으로 과장하거나 극적으로 강조하여 표현하였다.

이에 비해 우리의 춘화는 왜곡이나 과장 없이 자연스럽고 사실적으로 나타내어 보다 실감적인 느낌을 전달한다.

홍선표 교수(미술사학과)는 ‘조선시대회화사론’에서 조선후기 성풍속도에 대해“소탈한 실내와 야외의 서정적 경관이 당시의 현실적 정경과 함께 조성왕조 특유의 인문적 취향과 마감을 반영하고 있다”고 하였다.

또한 “음양의 조화를 갖춘 필묵법(짙고 엷고, 강하고 부드럽고 등)에 의해 주제와 부제를 합자연의 차원에서 통일적으로 나타내고, 저속한 외설음란물과는 구별되는 서정성과 예술적 감흥을 자아낼 뿐 아니라 당시의 고유한 풍유의식과 미감을 독창적인 형식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는 면에서 주목할 만한 가치를 지닌다”고 하였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 책에서 김흥도와 신윤복의 춘화로 분류된 작품들은 미술사학계에서는 아직 전창작품(작가의 인장이 후대에 붙여진 작품)으로 보는 것으로 이를 그대로 작가의 진작으로 설정하여 제시한 것에서 조금은 상업적인 의도가 느껴진다는 것이다.

물론 이 작품들이 홍선표 교수도 지적했듯이 이들 대가들 못지 않은 실력을 가진 화가가 그린 것임에는 틀림없다.

또한 김홍도와 신윤복 이전시대의 다른 작품들에서는 이와 동일한 양식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측면도 있지만, 이 작품들은 김홍도와 신윤복의 확실한 진작들과는 몇 가지 양식적인 면에 있어서 차이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 성 체험서를 비롯하여 TV에서도 성을 주제로 한 토크쇼가 붐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 책은 분명 춘화가 널리 보급되던 조선후기와 마찬가지로 시대의 조류에 부응하여 나온 것으로서 일반 대중들도 쉽게 구입할 수 있고 소위 말하는 춘화의‘무삭제판’이어서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물론 이 책은 발행인이 첫 페이지에서 밝히고 있듯이 ‘우리들 성문화의 어제와 오늘을 되새기는 좋은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그림을 그린 작가에 대한 정보가 매우 미흡하다는 것이 안타깝다.

작가와 작품에 대한 보다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 주었으면 하는 바램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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