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핏빛 비칠라, 꼭꼭 숨겨라’ 초경을 맞은 소녀에게 생리대를 쥐어주며 잊지 않고 남기는 이 말. 36녀간 완경(폐경)을 맞을 때까지, 매월 그날이 오면 이 주문을 외우면서 ‘생리하지 않는 여자’로 마술을 건다.

매울 우리는 몸에서 피어나는 피보다 더 붉은 월경, 인간을 창조하는 토대를 무형·무색·무향…무로 만들려는 노력은 언제까지 계속될까? 월경은 여성의 일상인 동시에 교묘하게 가리워졌던 삶의 한 조각이다.

지금 이 순간 여성의 5분의 1, 그리고 그들의 일생의 8분의 1이 월경중인 상태다.

가리워졌던 8분의1의 삶을 페스티발 형식을 빌려 드러내고자 한 여성운동이 열렸다.

10일(금) 고려대학교 대운동장 판을 벌인 월경페스티발 ‘유혈낭자’가 바로 그것. 고려대, 서울대, 서울시립대, 연세대 연합 여성문화기획팀 ‘불턱’은 술자리에서 우연히 나온 생리 이야기를 하나의 문화제로 꾸몄다.

생리할 때의 느낌, 불편함, 또는 그에따른 금기들-전혀 유쾌할 것 같지 않았던 이야기-그러나 너무 유쾌한 나머지 페스티벌을 열고 말았다고 한다.

7시 반 운동장에 밤이 찾아오자, 한가운데 놓인 무대는 온통 핏빛 조명으로 치장한 채 그 시작을 알렸다.

이후 여성의 질을 형상화한 무대장식 사이사이로 바바리 코트에 선글란스를 착용한 그네들의 첩보전이 시작됐다.

우리학교 총연극회 출신의 프리렌서 연극배우 문준희양(조소·98년 졸)과 현미자양(통계·95년졸)은 매달 생리를 치뤄내는 모습과 만약에 남자가 월경을 한다면 하는 상상을 꽁트로 풀어냈다.

남자점원 앞에선 생리대를 내밀지 못하고, 검은 비닐에 쌓여서만 옮겨지고, 여러겹 밀봉된 채 버려진다.

엄마와 딸만의 은밀한 이야기,향수를 뿌리는 날, 그 날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은 정말 한 편의 첩보전이다.

그것이 남성의 것이라면, 이렇게 은폐돼고 금기시되기는 커녕 ‘붉은 해 솟았다’고 외칠 그들만의 특권이자 또 하나의 유세 거리가 될거란 것이 그들의 얘기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 그리고 그곳에서만이라도 월경은 더이상 수치와 숨기려 애써야 할 것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자랑이고 경축할 일이었다.

생리중인 여성은 무대앞으로 나와달라는 사회자의 말에 눈치보기를 잠시, 무대 앞은 달거리하는 여성들로 꽉들어찼다.

그들은 ‘월경은 경축할 일’이라고 월경의 2행시를 지어, 월경이란 단어에 새 뜻을 주었다.

월경을 소재로 한 마지막 무대, 퍼포먼스 ‘신에게는 딸이 없다’는 몸통이 기저귀천에 묶인채 발버둥치는 한 소녀를 통해 월경에 대한 부정적인 사회인식이 주는 억압과 고통을 표현한다.

그녀를 옭아맨 손길에서 도망치려다 지쳐 쓰러지고만 소녀 위로 떨어지는 나래이션은 잔혹하기만 하다.

“생리통? 애 하나만 낳으면 끝나. 생리한단 얘길 왜 해, 자위한단 말 하면 좋냐?”는 육성엔 잠시 장내가 엄숙해졌다.

오기로 일어선 소녀의 피뿌리기로 본행사는 막을 내렸다.

또한 무대 외각에 마련된 부스에선 생리휴가 찾기·호주제 반대의 서명운동, 실직여성을 위한 장터, 퀴어영화제홍보 등이 정오부터 시작돼 여성운동 참여를 유도했다.

90년대 후반 여성운동은 마르크스 계급이론을 바탕으로 사회구조적인 측면에 초점을 두던 80년대 페미니즘과 달리 여성과 남성의 차이를 인정하고 문화를 통해 문제해결을 시도한다.

썰렁한 페미니즘 강연, 외곬수란 비난에 지쳐 새로운 여성운동 수단으로 문화를 고민했단 ‘불턱’. 이들은 남여의 차이를 인정하고 대중문화를 감싸안는 문화제를 치뤄냈다.

그러나 처음이 주는 신선함과 도발성 뒤로는 그 한계점이 남게 마련이다.

이번 페스티발은 생리를 전혀할 수 없는 여성은 소외될 수 밖에 없었고, 월경을 은폐하는 현상만을 보여줄 뿐 그 근본 원인을 찾는데는 미흡해 “식상한 얘기만 떠든다”는 혹평을 피할 수 없었다.

또한 공연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 초대가수들의 공연에선 여성축제란 면을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으며, 그들의 공연이 오히려 주가 되고만 주객전도 현상도 나타났다.

창피하다.

수치스럽다.

더럽다.

불결하다… 월경에 대한 편견은 그것을 배설물 이하로 깍아내려왔다.

여동생이 초경을 할때까지 엄마에게 조차 사실을 숨겨온 학생이 있는, 생리통 전문약 하나 없이 진통제를 생리통약 삼아 고통을 덮어야하는, 95년에야 생리대 광고가 허용된 그리고 그나마 생리얘기를 하는 것은 광고 뿐이다.

이것만으로도 월경 페스티발은 그 자체로 여성운동의 새 샴페인을 터뜨릴 만하다.

월경을 여성의 일부로, 내 삶의 일부로 인정할 때 축제는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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