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가 이재희씨를 만나

“우릴 취하게 하는게 아니라 우릴 깨우는 만화가/ 커다란 눈을 껌벅이며 어린애처럼 웃는 만화가/ ...근데 그 천친한 웃음안에는 삶의 곧게 보는 누구보다 냉철한 눈이 있더라고/ 그 웃음뒤에는 웃음을 지켜내는 진실과 욺음을 움켜잡아 놓지 않는 쇠팔뚝 같은 팔뚝이 있더라고... ” 박재동씨는 만화가 이희재씨를 그렇게 평했다.

우리에게는‘악동이’의 작가로 익숙한 이희재씨는 기성세대에게 역시 시사만화가로서 고정팬을 확보하고 있다.

상계동 작업실로 찾아가면서 사면이 만화책으로 그득한 작업실을 상상하던 기자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뜻밖에도 ‘한겨레21’. 그는 이와 어울리는 듯한 리얼이즘 만화가라는 칭호에 대해 쑥쓰럽게 웃으며 말문을 연다.

“사회를 보이는 대로 보고 그것에 대해 하고 싶은 소리를 만화로 그린 것 뿐인데,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더라구요.” 86년부터 시사만화를 그려온 이희재씨는 당시에 그려지던 카툰형식의 만화들이 형식만 외국에서 가져왔을 뿐 내용이나 주제들이 우리의 삶에서 걸러진 것이 아니라 외국것을 흉내내기에 그치는 것을 보고 그려 보고픈 욕심이 났다고 한다.

그가 그토록 담고자 애썼던 사회의 모습은 무엇일까. 87년 시민항쟁을 겪은 그의 시선은 박종철 고문사건과 안기부를 풍자한 고문시리즈를 비롯하여 형과 동생이 전경과 데모대로 만나는 형제시리즈, 통일시리즈 등 그의 만화에 여지없이 투영되어 있다.

“우리는 가끔‘말도 안되는 엉뚱한’, ‘혹은 황당하고 있을 수 없는’이라는 의미로‘만화같다’는 말을 쓰죠. 이건 만화가 실제의 사회를 담기에 어울리지 않는 매체라는 인식을 보여주는 것일 거예요.” 만화도 시대를 진단하고 비판할 수 있는 나름의 영역을 가지고 있다고 강조하는 이작가는 계속해서 말을 잇는다.

“하지만 그것이 냉소에 그쳐서는 안되겠죠. 입만 가지고 하는 비판만큼 쉬운 건 없으니까요. 요즘 젊은 사람들‘싫어’라는 말은 많이 하면서 문제를 제기하지만 대안이 없어요. 냉소는 아무것도 변화시킬 수 없다는 것을 기억했으면 해요.” 길거리에서 말 한 마디 잘못했다가는 쥐도새도 모르게 잡혀갔던 5공시절. 그런 시절에 감히 세태풍자만화를 그리다가 겪었던 에피소드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쓴 웃음을 짓는다.

“공수부대에서 전화를 하는가 하면 안기부에서 사과문을 제출하라는 압력도 있었죠.하지만 그 당시 만화는 위압씩이나 받을 만큼 경계의 대상이 되지 못했어요.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들어주지조차 않는 사생아 같은 존재였죠” 사설만화학교의 강연을 맡고 있어서 젊은 사람들과 접할 기회가 많다는 이작가는 요즘 친구들을 보며 많은 생각이 든단다.

“요즘 만화 그리는 친구들 보면 신세대라는 말을 실감해요. 소재부터가 동성애니 마약이니 에이즈하며 관심의 대상이 많이 넓어졌죠. 물론 소재 자체에 대해서는 제한이 없어야 하지만 가치의 순위는 있어야 하죠. 세상이 바뀌어도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이 여전히 존재하니까요” 지난달에 출간된 이희재씨의 만화모음집‘간판스타’를 들춰보면서 그가 말하는 변하지 않은 것과 변하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본다.

우리가 만화를 통해서 꾸는 꿈들과 현살과의 간극을 좁혀 세상이 전진하는데 보람이 됐으면 좋겠다는 이희재씨. 그 말을 뒤로하며 기자는 벌써부터 꿈을 꾸고 있다.

만화같은 세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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