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사주최 현상문예 중편소설 당선작 - 무녀리(6)
본사주최 현상문예 중편소설 당선작 - 무녀리(6)
  • 이대학보
  • 승인 1991.07.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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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겨울 『으흐흐. 추워』 꼬마 진석이는 몸을 웅크리며 병태의 옆구리로 파고 들었다.

『녀석 아직은 그렇게 추운 날씨가 아닌데.』병태는 진석이를 토닥거리며 감싸 안았다.

진석은 병태의 가슴에 얼굴을 묻으며 춥다는 말을 한마디 더 했다.

진석이의 까칠한 입술이 병태의 쉐타실에 닿아 꺼끌꺼끌거렸다.

진석이는 국민학교 2학년 학생이었고 고아원에서 탈출하여 이 곳까지 오게 되었다.

속상하면 찡그리는 모습이 귀여워서 사람들이 일부러 약올리곤 했다.

진석이만 추위에 예민한 것은 아니었지만 아무도 보급소 한기에 대해 입밖에 내지 않았다.

날씨가 추워져도 난방시설은 작동되지 않았다.

온도계가 가늠할 수 없을 정도가 되어야만 보일러를 작동시킨다는 묵계가 계속되고 있었다.

모두들 체념한 채로 매일 밤을 견디어 갔다.

사람들은 보일러를 틀게 하기보다 자신이 한기를 잊으려 애썼다.

병태는 매일 밤이면 느껴지는 한기에 무감각해지지 않는 자신의 신체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씨발, 보일러는 왜 안때는 거야?』 제일 고참인 만수가 진석의 칭얼거림에 발끈해서 한마디 내뱉었다.

그러나 아무도 대꾸하지 않고 만수도 몸을 몇번 뒤척이다 잠이 들어 드렁드렁 코까지 골았다.

병태는 옆에 누운 영철에게 말을 건넸다.

『영철아, 내일이 시험이구나』 『걱정하지마, 처음도 아닌데』 『꼭 붙을거야. 시험 끝나고 교문앞에서 보자. 술 사줄께』 마땅히 덮어줄 것도 없었다.

병태는 입고 있던 허름한 외투를 벗어 한겹 더 씌워 주었다.

『내일은 내가 네 구역 돌려줄께』 병태는 눈을 감으며 내일 영철에게 아침을 뜨끈하게 먹여야겠다고 생각했다.

영철은 잠이 안오는지 자꾸만 뒤척거렸다.

『형?』 『왜 그러니?』 병태는 눈을 감고 있었지만 영철이 부스럭거리는 소리도 놓치지 않고 있다가 금방 대답했다.

『우리 엄마, 아빤 내 이름 뭐라고 지었을까? 영철이란 이름은 원장님이 지어 주셨는데. 난 너무 싫어』 『이름이 뭐가 중요하니? 나도 내 이름이 마음에 안들어. 부모님이 지어주셨는데 말야』 『형, 내가 고아라는 게 뭔지 알게 되었을때 부모란 작자가 얼마나 미웠는지 알아?』 『그분들한테도 이유가 있었을거야』 『사는 게 힘들면 우리 부모님은 나보다 더 죽을 맛이라서 날 버렸을 거라고 생각해』 『이런 녀석, 어른이 다 돼가네』 병태는 영철의 머리를 어루만졌다.

『나, 어렸을 때 항상 이런 꿈을 꿨어. 아주 부자인 우리 부모가 선물을 사들고 날 찾아와 그리고 옆엔 항상 예쁜 여동생이 웃고 있어. 그런데 병신같이 아직도 그 꿈을 꾸곤 해 』 『임마, 그건 네가 그런 가정을 꾸미라는 암시야. 난 꿈풀이 도사다』 『아유, 형은 언제나 마음이 편해보여. 그게 부러워.』 『그만 자라. 이러다가 한숨도 못자고 시험 보겠다』 영철과 몇마디 지껄이던 병태는 영철이가 잠들었는지 모른채 깊이 잠이 들었다.

아침에 배달을 서둘러 끝낸 병태는 자주가던 식당에 들렀다.

『어머니, 안녕하셔요?』 『어서와. 춥지? 이리 앉아』 따끈한 물을 건네 주는 식당 아주머니는 연탄 난로 옆으로 자리를 내주었다.

병태는 입주 과외 집에 늦게 되면 자주 이 집에서 밥을 먹었다.

그런 인연으로 주인 아주머니를 어머니라 부를 정도로 따랐다.

『따끈한 된장국 한 그릇만 싸 주세요』 『그래』 쟁반위에 깍두기 한 접시, 뚝배기, 수저가 가지런히 놓였다.

『웬일이야? 아침부터 밥을 싸 가구』 『영철이가 시험봐요』 『우리애도 내년에 시험보는데 걱정이야. 영철이한테 잘 보라고 그래』 『고마워요. 어머니』 김이 피어오르는 쟁반을 들고 식당을 나왔다.

행여 찬 바람에 식지 않을까 걱정하며 숙소로 갔다.

배달을 일찍 마치고 온 아이들이 그게 뭐냐고 보채기도 하고 조르기도 했다.

『영철아, 일어나. 밥먹고 시험보러가야지』 바싹 웅크리고 있던 영철은 일어나 앉으며 침구를 정리하고 병태의 외투를 돌려 주며 따뜻하게 잤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이거 먹고 시험 잘봐. 식당어머니가 특별히 신경써서 해 주신거야』 『와 많다.

같이 먹자. 형』 『난 됐어』 병태는 맛있게 먹는 영철을 지켜보다가 보급소 사무실로 가서 뒷정리를 하고 숙소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맛이라곤 통 없는 식사를 하면서 영철에게 아침을 사다주길 잘 했다고 생각했다.

영철이가 시험장으로 떠나려는데 숙소사람들이 저마다 엿을 사들고 왔다.

『너무 많다.

테레비에서 봤는데 벽에다 막 붙이고 그러더라. 우리도 그러자』 진석이는 갑자기 엿이 많아지니까 신이 났다.

영철은 일생에 이런 대접은 처음이라고 어색해하며 시험장으로 떠났다.

ㄱ대학 교문앞에서 병태는 영철의 모습이 나타나길 기다렸다.

자가용으로 도배한 학교 앞에서 서성이며 3년전 자신이 혼자 시험장을 나왔던 기억이 났다.

모든 수험생이 부모는 다 온 것 같았다.

수험생이 시험장을 나서기가 무섭게 부모들이 달려 들어 이것저것 묻고 수고했다는 격려의 말을 덧붙였다.

병태는 올 사람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서운했다.

영철에게 그런 쓸쓸함을 느끼게 하고 싶지 않아 병태는 서둘러 교문 앞에 서 있었다.

『형!』 영철이는 병태를 발견하고는 춤을 추듯 달려 왔다.

『자식, 자신 있나 보구나. 표정을 보니』 영철은 대답 대신 이를 내놓고 웃어 보였다.

『가자. 술 마시러』 병태는 미리 가불해 온 몇 푼 안되는 돈을 가지고 생맥주 집으로 들어 갔다.

시험을 끝낸 학생들로 자리가 꽉 메꾸어져 있어 겨우 구석에 자리잡고 기분좋게 몇잔씩 마셨다.

『형, 고마워 형이 정말 우리형같다』 영철이는 어느새 훌쩍거리고 있었다.

『녀석, 취했구나. 우는 걸 보니』 『아니야』 영철이는 연신 소맷부리로 눈자위를 훔쳐댔다.

『나한테 고마워 하긴, 나에게 고맙게 받았다고 생각되는 것을 언젠가 너랑 똑같은 사람에게 베풀어, 서로 돕고 사는 세상이 얼마나 좋으니? 그만 훌쩍거리고 술이나 마시자』 둘은 다시 건배를 하고 단숨에 들이켰다.

입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맥주는 혀를 넘어 식도를 타고 위로 들어가 찰랑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