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 방황을 마치고 난 새로운 시작은 무엇?
서평 - 방황을 마치고 난 새로운 시작은 무엇?
  • 이대학보
  • 승인 1991.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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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지음「그리고, 그들의 아름다운 시작」을 읽고 「방황소설」이자「성장소설」이라 할 수 있는 공지영의 두번째 장편「그리고, 그들의 아름다운 시작」 칠흑같은 어두움의 시기, 80년대에서 84년까지-광주민중항쟁,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 KAL기 격추와 버마 아웅산 폭파 사건으로 점철되었던-를 시대적 배경으로한 이 소설은 그때의 암울했던 대학가의 모습과 대학인들의 고뇌, 그리고 그들의 각성의 소리까지를 담아내고 있다.

첫장편「더 이상 아름다운 방황은 없다」에서 이 시대엔 방황이, 더우기 아름다울 수 있는 방황이 더이상 없음을 선언했던 작가가 이제「아름다운 시작」을 논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사촌 자매 지간인 지수와 은수이다.

부유한 가정환경에서 자란 이기적이고 자존심 강한 지수와 항상 그에 열등감을 느끼면서 함께 자라온 사촌 동생 은수는 각기 국어선생님과 신학대학생을 사랑하며 불안한 사춘기를 보낸다.

그들은 하나의 자연스런 과정으로서「대학생」이 되고 그런 그들앞에는「현실」,「모순」, 지식인으로서의「양심」과 행동에의「고뇌」그런것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지수는 높은, 스스로 파악할 수 없고 파괴할 수도 없는 자신의 벽 앞에서, 앞으로 나가지 못한채 다만 흔들리고 유동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은수는 행동으로써 직접 뛰어든다.

시위를 주동하던 은수와, 지수 자신이 사랑했던 대학 신문 기자이며, 시를 쓰던 기훈의 구속은 지수를 벼랑으로 내몰지만 지수는 여전히 자기모순이란 벽 속에서 허덕일 뿐이다.

『언젠가 넌 노동자가 되고 싶지도 않고 피흘리는 것도 원하지 않기 때문에 운동에 뛰어들지 않았고, 또 그것이 괴로움을 가중시켰다고 했지』 『단지 괴로움만으론 아무 것도 안되지만 우리들 젊은 날의 치열했던 고민들을 잊지 않고 있는 한, 너에겐 많은 가능성이 남아있어 너의 괴로움에 천착해라. 그것의 끝이 보일때까지.』 자신속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그녀에게 새로운 빛을 비추어 준 것은 써클의 지도자였던 나 은경이었다.

지수의「아름다운 시작」은 바로 구속된 기훈을 면회가는 것이었고 이 소설은 여기에서 끝을 맺고 있다.

그러나 이 소설은 지수의 방황과 성장과정에만 촛점을 두고 있지는 않다.

신학생인 석우의「현실속의 신」과「신비의 신」에 대한 갈등, 노동운동써클의 지도자인 승후, 은수의 친구였던 동숙 등 한 지식인으로서 자신의 내부속에 견고히 쳐진 울타리를 깨려 시도하는, 그러다 스스로 파멸해 가기도 하는 수많은 대학인의 모습을 이 소설은 그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소설에 등장한 인물들은 그 많은 수에도 불구하고 각각의 개성이 뚜렷히 부각되지 않을 뿐 아니라 서로가 충고하고 상처받는 공감대 형성의 과정속에서 그나마의 성격들마저 희석되어버리고마는 아쉬움을 남겨준다.

또한 은수는 그 감동하기만 잘하는 나약한 대학생의 신분을 버리고 직접 노동계급이 되기위해 현장으로 투신한다.

하지만 왜 그녀가 굳이 노동자이어야만겠다고 결심하게 되었는지를 뚜렷이 밝히지못한 이 작품은 이 책의 거의 모든 인물들인 대학생들의 계급적 전형성을 창출하는 데에도 실패한 느낌을 준다.

80년대 초반의 어둡고 암울했던 그 시기를 충분히 반영하고 그 상황에 규정받고 고민하는 인간으로서의 모습이 아니라 이 소설 속의 인물들은 단지 자신의 개인적 문제로서의 모순과 오류에만 휩싸여 있음으로, 작가는 철저히 사회적이고도 연대적인 인간을 그려내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 이 소설의 결말까지도 지수가 기훈을 찾아가는 것으로 그치고 말아 개인적인 행위와 각오의 결말이 되고 만다.

한 예술작품은 그 사회적 파급력으로 인해 현재를 살고 있으며 그 작품을 읽고 있는 독자에게 책임을 진다.

이 책은 80년대 초반을 다루고 있다.

그러나 서사적 과거와 10년을 뛰어넘은 현재가 이 소설 속에 일관되지 못함으로서 이 책은 80년 당시의 험난한 상황을 회고하고 그때의 고민들을 되돌아보는 이상의 의미를 안겨주지는 못하고 있다.

결국 작가가 제 1장에서 제목붙인 대로 우리의 현실이 아직도「꽃들은 꽃씨속에 누워」있기 때문일까? 이 작가는 「대통령의 이름이 바뀌고, 경찰은 교문안에서 밖으로 제자리를 잠시 바꾸었지만 변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전한다.

결국「그리고 그들의 아름다운 시작」은 끊임없이 방황할 수 밖에 없는 우리에게 그때의 힘들었던 싸움을 전해주며「어서 시작하라」고 격려해주는 한 선배의 회고의 목소리로서 다가설 수 있을 듯 하다.

박준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