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편소설당선작]― 무녀리(2)
[중편소설당선작]― 무녀리(2)
  • 이대학보
  • 승인 1991.06.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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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태는 자신의 배고픔을 돈으로 환산했고 나름대로 허기를 견딜수 있는 힘이 되었다.

그렇지만 월급 타는 날이면 단골 식당에 가서 한 달에 한번 푸짐하게 먹었다.

매번 최후의 만찬을 드는 기분이었지만 그럴 때마다 한달을 시작하는 식사라고 얘써 기분을 돌렸다.

그 하루 때문에 한달 점심을 커피한잔으로 때울 수 있었다.

TV에선 국산차를 마시라고 떠들어 대지만 병태는 그때마다 코웃음을 쳤다.

카페에가서 메뉴판을 쭉보다가 결국 「커피」를 선택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설록차, 칡차, 인삼차, 유자차… 등이 커피보다 훨씬 고가의 음식이었다.

병태는 그런 얘기가 돈 많은 사람만이 애국하라는 소리로 들려 한귀로 흘려 버렸다.

고개를 뒤로 젖혀가며 커피를 마셨지만 바닥과 통이 이어지는 경계선에는 커피로 갈색 테두리가 만들어졌다.

매번 그것까지 먹고 싶다는 욕심에 입에 잔을 거꾸로 대고 손끝으로 두들겨도 흘려 나오지 않았다.

병태는 그만 포기하고 가까운 휴지통에 종이잔을 던졌다.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 정확히 가운데 떨어졌다.

?오늘 점심 끝이다? 병태는 아직 기시지 않은 허기를 잊으려고 중얼거렸다.

그래도 진수네로 가면 저녁을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오후 수업을 빨리 끝나기만을 바랬다.

따르릉, 따르르릉… 입주 과외 집에 들어서자 마자 전화벨 소리가 울려댔다.

?네, 네. 병태학생, 전화받아요? 주인집 아주머니가 건네 주는 수화기를 받아 쥐었다.

?이게 뭐꼬? 니 성이 또 말썽인가 부다.

내사 마 마음 졸여서 우이 살겠노?? 어머니의 다급한 목소리는 병태의 귀향길을 재촉하고 있었다.

? 무슨일입니꺼?? ?경찰에서 찾아 왔다아이가, 니성을 내놓으라카 안하노? 병태는 직감적으로 큰 일이다 싶었다.

일생동안 법없이도 살아 갈 두분이 갑자기 들이 닥친 형사에 놀래 병태에게 전화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옆에서 병태를 지켜 보던 아주머니가 의식되었지만 어머니의 다급함에 내려가겠다고 대답했다.

당장 나가려고 방에 들어가 가방을 두고 나오는데 주인 아주머니가 병태 눈치를 보며 한 마디 했다.

?내일이 진수중간고산데, 저번에 성적이 떨어져서? 말에 갈고리가 들어 있어 병태를 잡아당기고 있었다.

?집에 좀 급한 일인가 봅니다.

금방 갔다 오겠습니다.

시험 계획표가 있으니까 그대로 하라고 전해주세요? 3년동안 진수의 성적에 따라 조금씩 대우가 달라졌다.

그런데 문제는 요즘이었다.

고2까지는 그런데로 괜찮던 성적이 고3이 되고 나서 급격히 하락하기 시작했다.

원래 심약한 아이라 모의고사를 볼때면 손이 떨려서 제대로 쓸수가 없다고 호소했다.

진수가 어머니께 말씀드리기 어려워 해서 병태가 대신 얘기를 했더니 핑계라며 공부나 열심히 하라고 했다.

그리고 진수를 불러 어떻게 지금 이만큼 살게 됐는지 한참을 설교하고 과외선생님까지 대주는데 그까짓 공부도 못하냐고 야단을 치면 진수는 풀이 죽어 자기방으로 갔다.

?그래도 고3인데? ?걱정하지 마세요? ?마음이 편하지가 않아서 그래.? ?다녀 오겠습니다.

? 병태는 뛰다시피 집을 빠져 나와 터미널로 갔다.

도대체 형에게 무슨 일이 있는 것인지 생각해 보았다.

몇달전 형을 만난 적이 있었는데 공장 얘기만 잔뜩 하다가 헤어졌었다.

임금이 적으니 더 받아야 한다는 둥, 작업환경이 나쁘다는 둥 대충 노조문제인 것 같았다.

그래도 형의 그때 얘기로 보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 같지 않아 별신경 쓰지 않았다.

병태는 가끔 학교를 지나다니면서 「노동자」가 들어있는 대자보를 몇번 보았었다.

그렇지만 별관심 없이 지나 갔었고 형이 노동자란 것을 알면서도 대자보 속의 노동자와 연결시켜 생각해 보지 않았었다.

형이 빨간 띠를 두르고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부르는 모습은 전혀 상상되지 않았다.

형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서울로 가출한 문제아였다.

어렸을 때부터 병태는 형에 대한 미묘한 우월감을 갖고 있었다.

공부 잘하는 것이 곧 성공의 길이라 생각하셨고 등수로 우열을 평가하셨던 부모님들은 학교 성적이 뛰어난 병태를 더 귀여워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특별히 할 일이 없던 형은 밭에 나가 일할 생각은 안하고 친구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고 밤늦게 돌아다녔다.

아버지 어머니의 호통은 아예 효력 발생을 하지 못했다.

병태가 보기에는 대학교를 가고 싶은 눈치였다.

그러나 남의 땅을 몇마지기 경작하는 집 형편을 잘알고 있던 형은 자신의 성적이 부끄러워서라도 감히 얘기하질 못했었다.

병태는 그것을 알고 있었지만 도울방법이 없다고 생각해서 모르는 척 했고 자신이 고등학교에 들어가는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부모님은 은근히 형이 농사를 거들기 바랬었다.

그 뜻을 노골적으로 표현하시지 못한 탓인지 결국 형은 서울로 가서 돈벌겠다는 쪽지를 남긴 채 야밤에 가출했다.

아버지는 이제 큰 아들은 없는 거라며 냉엄하게 말했지만 어미니는 몇칠동안 울고불고 난리였다.

그땐 형이 인내심도 없고 부모님 생각도 안하는 불효자라고 생각했지만 병태가 대학에 붙고 등록금을 마련할 방도가 없자, 서울로 올라와 맥주집에서 써빙을 시작했다.

개강과 동시에 마침 입주과외 자리가 생겼다.

3년 만에 두 형제는 서울에서 각기 다른 터전을 갖고 상봉하게 되었다.

형은 공장근처에 자취방을 얻어 생활하고 있었다.

병태는 가끔 들러 같이 술을 마시곤 했다.

유년시절 인정할 수 없었던 형의 모습들을 조금씩이나마 받아 들이기 시작했고 뒤늦게야 형제애의 끈끈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한달 월급에 쪼들리면서도 병태가 가면 많은 음식을 사주었고 남의 집 살이가 어려울 거라며 이것저것 물어 보았다.

형을 만나고 온 날은 유난히 마음이 편해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꿈 속에서 형과 매미잡고 쥐불놀이 하던 풍경이 곱게 펼쳐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