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배·시인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를 외쳤던 시인 김지하의 변절된 근래의 모습(「조선일보」5.5일자「죽음의 굿판을 당장 걷어치워라」)을 보면서 우리는 다시 한번 진리와 당파성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우리 스스로에 대해서 과연 역사에서 무엇을 배웠고, 누구의 입장에 서서 그 어느것을 배워야 하는 가 역시 물어보아야 한다.

「황토」,「오적」,「타는 목마름으로」의 시인 김지하가 「애린」을 쓰기 시작하면서, 그가 마르크스주의를 공격하며 생명사상을 주창하기 시작하면서 그를 아는 수많은 이는 이러한 그의 변절의 조짐에 대해서 걱정하지 않을 수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걱정은 독재권력의 쇠파이프에 강경대학생이 비통하게 목숨을 빼앗기고 우리들이 다시 한번 붉은 피 철철 흐르는 민중의 민주주의를 확인하던 그 순간 분명한 현실로 나타났다.

『설마 기지하가 그럴수 있다니』하는 의구심은 들기에 앞서 모든 민중은 『「오적」의 시인 김지하는 이제 우리들의 오적이 되었다』는 즉각적 분노의 표출을 더 먼저 나타냈던 것이다.

그리고 민중들은 거의 모두가, 금세기 최고의 노동자 시인 박노해가 김지하의 「오적」을 읽으며 우리 사회의 모순을 깨닫고 혁명의 길을 걸어갔다는 자기 고백이 지금 귓전에 생생하게 만아 있는데 하는 생각을 하며 한편으로는 배신감에 앞서 깊은 절망감에 빠져있는 사람도 없잖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은 이렇게 대답하여야 한다.

김지하가 광기어린 목소리로 젊은 꽃들의 죽음의 행렬을 비난하고 왜곡하며 『도대체 역사에서 무엇을 배웠는가?』하는 질문을 던질 때 우리는 이를 다시 한번 가슴속에 씹어삼키며 이렇게 자신있게 대답하여야 한다.

우리는 플로베르와 도스토예프스키, 그리고 최남선과 이광수를 배웠다고. 그리고 늘 상승하는 시기의 계급의 입장에 함께 하려는 당파적 태도를 분명히 할 때만이 역사의 위대한 행군과 진리의 드넓은 바다를 향하여 나아갈 수 있다는 역사적 사실을 배웠다고. 아울러 대답과 함께 그에게 거꾸로 질문하여야 한다.

지금까지 모든 관념론의 역사가 수도 없이 많은 민중의 생명을 죽여왔다는 사실과 참다운 민중의 생명옹호는 세련된 종교의 변종으로서의 관념론의 입장으로서가 아니라 상승하는 시기의 계급적 입장과 유물론적 관점에 입각했을 때만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진정 그대가 몰라서 그러는가 하고… 여기서 우리는 맹목에서 비롯된 종교의 신념과는 확연하게 질을 달리하는 우리들의 역사의 신념을 콘크리트보다 단단하게 가슴팍에 더욱 굳혀나가야 할 것이다.

우리는 아직도 피 철철 흘리며 골목골목 쫓겨다니는 우리 민중의 민주주의를 햇살 맑은 민중의 나라 그 새벽강에 깨끗이 씻으며 부활하는 우리 승리의 신념을 굳게 움켜잡고 이 아름다운 세상을 우리 앞에 실현하기 위해 굽힘없이 나아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김지하에 대해 이런 사실을 환기시키자. 도스토예프스키는 진보적 사회의 견해를 지지하는 사람으로서 창작활동을 시작했으나 유형 이후, 러시아 사회생활의 반동적 진영의 지지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그의 작품 「악령」에 이러한 점이 어떻게 반영되어졌는가를. 프랑스의 최고의 예술가 플로베르가 일생동안 자기 작품속에서 반동적 부르조아를 폭로했지만, 「파리콤뮨」에 대해서 적대적 태도를 취함으로써 일순간 진리의 바다로부터 일탈해나갔던 사실을, 그리고 해방 후 이광수가 반민특위에 의해 붙잡혀 옥에 갇혔을때 『나는 정말 조선이 해방될 줄 몰랐오』하며 참회의 눈물을 흘렸던 사실을. 그리고 우리 다시 김지하에 대해 이렇게 말하자. 당신의 작품 『타는 목마름으로』등이 민중의 보편적 미의식을 획득할 수 있던 것은 자기 계급의 이해뿐만이 아니라 모든 민중의 이해를 대변할 수 있는 상승하는 시기의 계급적 이방에 서있었기 때문이라고. 그런데 현재 상승하는 시기의 계급은 노동계급이니, 이에 대해 중간적 입장을 취하려는 모든 태도는 결국 지금의 신식민지파쇼권력을 비호하는 음모에 지나지 않는다고. 그리하여 돌아오라, 김시인이여. 이광수와 서정주와 같은 운명이 싫으면 어느새 민자당의 앵무새가 된 그대의 혓뿌리를, 피울음울며 단호하게 잘라내고 무한광대의 따뜻한 민중의 생명의품으로, 노동자 계급의 가슴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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