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반악법에 대한 도전장 88년 이후 놀랄만큼 빠른 변화, 발전을 보여온 대중가요 작곡가겸 가수인 정태춘이 지난 5월 7일 자신이 만든 비하법음반 「아, 대한민국…」의 발표회와 기자회견을 가졌다.

대중가요 가수로서 나서서 비합법음반을 만들어 공개한 것은 우리나라 가요사 70년에 처음있는 일이다.

즉 그가 비합법음반의 공개발표회를 가진 것은 검열과 다를바 없는 심의제도와 음반업의 독과점을 유지시켜주는 현재의 「음반법」 에 대해 공개적인 거부의사를 표명하고 이에 맞서 싸우겠다는 공식적인 도전장을 낸 것이며, 따라서 정태춘의 비합법음반 발표회와 기자회견은 우리 대중가요의 70년역사에서 처음으로 대중가요인이 음반법이라는 법제도에 대해 정면으로 반기를 들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행 음반법에 대한 문제점은 이미 오래전부터 지적되어 왔었으며, 88년 이후 진보적인 음악인들의 요구를 수합한 야당들의 합의한으로 보다 민주적인 음반법초안이 제출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민자당 창당 후 정부는 이러한 요구를 완전히 묵살하고 오히려 현재의 음반법보다 더욱 개악된 「음반과 비디오물에 관한 법률안」을 국회에서 통과시켰다.

민족음악협의회에 소속되어 있는 진보적 음악인들과 대중가요인들의 모임인 하머니회, 대중가요작가협회는 함께 이 음반법의 개악에 극렬히 반대하였으나 음반법의 개악은 강행되었다.

진보적 음악인들이 문제삼고 있는 항목은 실질적으로 검열과 다를바가 없는 심의와 음반업의 독과점체제를 유지시켜주는 음반제작자 등록에 관한 규정이다.

공연윤리위원회에 의한 심의제도는 우리의 대중가요를 사랑타령과 허구적인 건전가요로만 묶어두는 가요에 대한 통제장치이며 음반업의 독과점이 유지되므로 이러한 비민주적인 통제장치에 음반업자들이 반발을 하지 않고 알아서 기는 것이다.

음반법의 원래의 취지대로 한다면 심의제도나 제작자 등록에 관한 조항은 음란·퇴폐음반이나 불법복제음반으로 돈을 버는 것을 막으려는데에 그 목적이 있다.

그러나 실상 「오늘밤 나하고 우우우우 사랑할 거야」「외로울 땐 나를 보러오세요」같은 가사는 용인되면서도 「선생님, 우리선생님, 이제 그만 야단치세요…」로 시작하는 「우리이야기」같은 건강한 노래는 「저질적인 가사」라고 전면개작지시를 내리며, 가사에 「진달래」「피」라는 단어만 나오면 무조건 금지될 정도로 사회적이고 진보적인 내용의 가사에 대해서는 철저히 통제한다.

또한 종로나 광화문에 가면 언제든지 천원이나 천오백원짜리 불법복제테이프를 길거리에서 구입할 수 있다.

그렇게 버젓이 불법복제테이프가 판매되는데도 이를 단속하지 않고 상업적인 음반도 아닌 민중가요테이프에 대해서는 수거·제작·배포자 구속 등의 강경조치를 내리고 있다.

작년말 광주의 박종화가 당국에 등록하지 않은 불법음반을 만들었다는 이유로 구속되었고, 올초에는 노동가요 테이프를 소지하고 있던 대우조선의 노동자들이 불법테이프를 배포했다는 이유로 구속되는가 하면, 급기야는 노동자 노래단 등에서 만든 노동가요 테이프를 배포했다는 이유로 서울노동자문화예술단체협의회 대표 박인배씨가 구속되었다.

정부는 여러 통로를 통하여 음반법은 음란퇴폐물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선전을 하고 있으나, 이러한 실례만 보아도 음반법이 음란퇴폐물보다는 진보적인 노래문화를 통제하기 위한 구실로 더 적극적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것이 명백히 드러난다.

따라서 올 2월 음반법의 개악은, 진보적인 노래문화와 민족음악운동을 탄압하겠다는 일종의 선전포고였던 셈이다.

이렇게 본다면 이러한 법의 개악과 잇단 구속사건에 맞서 이에 명망성을 가진 대중가요 가수가 비합법음반으로 음반법제도와 맞서겠다는 것은 매우 의미깊은 일이다.

정부는 이 가수의 명망성 때문에 함부로 구속할 수도, 또 구속하지 않을 수도 없는 난감한 처지에 빠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정태춘은 기자회견이 끝나고 「아, 대한민국…」이라는 비합법음반을 전국적으로 싸인판매를 하겠다고 나섰고, 아직 정부측에서는 이렇다할 만한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이 사건이 어떻게 마무리지어질 것인가가 앞으로 비상업적 민중가요테이프들에 대한 탄압이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기와 밀접히 연관되어 있으므로, 앞으로 귀추가 주목된다.

이영미 노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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