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에는 영화인협회주체의 제29회 대종상영화제시상식이 있었다.

한국영화의 권위회복과 심사기준의 공정성을 끊임없이 부르짖는 가운데에서도 예년과 다름없이 심사기준의 부적절함이 문제가 되었다고 하는데... 「범죄자들이 만든 영화와 정치적인 영화 또는 전쟁을 찬양한 영화는 심사대상에서 제외시킨다」라는 심사규정에 의해 사회성 있는 영화들-그들도 우리처럼, 은마는 오지 않는다-이 본선진출과정에서 대거탈라되고 말았다.

이렇듯 권위있는(?) 영화제에서 영화창작과 표현의 자유가 공개적으로 제약받고 있는 것을 보니 아직 「한국영화의 질적 수준의 비약」운운하는 것은 섣부른 일인듯싶다.

하지만, 이런 상황하에서도 영화의 예술성을 고양시키려는 젊은 감독들의 새로운 흐름을 통해 우리들은 한국영화예술의 미래를 그려볼 수 있을거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로 잘 알려진 강우석 감독의 야심작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도 그중의 한 작품이다.

그동안 부분적으로 정치현상을 다룬 영화가 몇 편 있긴 했지만 대중의 감각적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정치, 그 뒷얘기」중심으로 흘러왔었다.

그에 비해 이 영화는 대통령선거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정치비리의 광폭한 소용돌이 속에서 일선취재기자들과 권력의 충돌이 박진감 있는 장면처리와 함께 진지하게 그려지고 있다.

첫 장면만 봐도 그 줄거리가 훤하게 드러나는 폭력·섹스물, 멜러물이 판치는 현실에서 「누가 용의...」의 주제는 신선하게 다가온다.

가상시나리오긴 하지만 있을법한 이야기라서 더욱 관심이 갔고. 영화줄거리를 대충 이야기한다면 이러하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유력한 후보자인 정치인사 한명이 테러로 인해 피살되는 사건이 벌어진다.

이 테러장면을 우연히 목격하게된 여성아나운서 김지원. 한편, 방송국의 정치부기자인 최종수는 대통령선거취재를 맡게되는데 후보피살사건을 취재하던중 미심쩍인 점들을 발견하게 된다.

언론에서는 자살로 사건을 마무리 지으려하고 유일한 목격자인 김지원은 대통령선거 입후보자인 야당인사와 내연의 관계에 있었으므로 선뜻 진실을 밝히지 못한다.

비겁한 침묵으로 진실을 내리누를때 왜곡된 역사는 결코 제 갈 길을 찾을수 없다고 역설하며 지원을 아니, 관객 모두를 설득하는 최기자와 그의 친구. 지원의 증언으로 사건의 진상이 조금씩 밝혀지기 시작할때 테러의 손길은 이 세사람을 덮치기 시작한다.

여기서 주제를 잃지 않고 인물의 심리묘사에 치중하지 않으며 사실적인 구성으로 작품을 풀어가려는 감독의 연출이 나는 참으로 좋았다.

권력의 입김에 승복하는 듯하다가 극적인 반전을 꾀해내는 뒷부분이 좀더 강했더라면 주제의 메세지가 강렬하게 전달되었을텐데하는 아쉬움이 남긴 했지만... 영화의 오락적 기능이 강하게 부각되고 있는 지금에서 건강한 대중문화 창출을 우리가 생각한다면 이와같은 영화가 광범위하게 제작되고 확산되었으면 좋겠다.

농축산물, 통신, 보험 등 미국의 개방압력에 무너져 가고있는 시장이 늘어가고 있는 지금에서 그렇지 않아도 미국의 대중문화에 깊이 물든 이땅에서 영화의 개방은 무척 심각하게 다가오고 있다.

프랑스 시인 장꼭토의 「한편의 훌륭한 영화는 인간의 사상을 단시간에 바꾸어 놓을수 있고 역사의 흐름까지도 단숨에 바꾸어 버릴수있다」고 한말이 새삼스럽게 기억나는 것은 무슨까닭일까? 영화를 만드는 주체는 영화인들이겠지만 관객이 그 영화를 외면한다면 영화의 예술적 발전은 기대하기 힘들것이다.

「누가 용의 발톱을...」는 이런 사회적 배경하에서 용기있게 내놓은 작품이다.

이런 영화가 계속적으로 양산되기를 바라는 심정에서 많은 이들에게 권하고 싶다.

대중문화가 딛고 설 땅이 대중이라고 한다면 영화의 수준을 논하기 이전에, 영화의 질적 비약을 뒷받침해줄 수 있는 든든한 땅을 우리 모두의 손으로 구축함이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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