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우리들의 천국」

보기 좋은 벽돌집 앞에 나란히 어깨를 걸고 섰는 중년부부와 그들의 세 아들. 「우리들의 천국」은 이렇듯 사뭇 정겨운 풍경으로 우리들을 TV앞으로 유인하는데 성공한다.

게다가 썩 잘생긴 남자 주인공이 대학생이라는 사실에 망설임없이 자리를 잡고 앉아 우리는 그것을 동질감이라 표현한다.

그러나 그 동질감은 시간이 흐를수록 배신감으로 변한다.

이데올로기 공세란 근사한 남녀배우의 사랑 속에서 마저 숨쉴 수 있음에 얼굴을 찌푸리는 것이다.

이 드라마는 한가족을 기본구조로 한다.

대학교수 아버지와 전형적인 가정주부 어머니, 그리고 대학 초년생 진수, 쌍동이 고교생 미수, 선수가 이루는 아늑한 가정을 토대로 이루어진 이야기 진행의 주축은 다시 진수의 학교생활로 옮겨진다.

떠돌이 고학생 성대가 진수의 동기로 등장하고 운동권 학생을 대변하는 선배 회성과 그의 연인인 재벌회장 딸 미희가 등장한다.

너저분히 서술한 이 이야기 구조에서 주요하게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이러저러한 대학의 모습이다.

그러기에 이 드라마의 현실성 여부는, 대학의 정경에서부터 살펴질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작가는 운동권 학생을 무시무시한 간첩 정도로 몰아치는 실수를 범하지는 않고 있다.

오히려 현실의 일부분으로 인정하고 학구적인 희성의 분위기나 그의 발언 한마디에까지 세심한 배려를 잊지 않고 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골아픈 이 운동권 학생의 처리에서 작가는 한계를 드러낸다.

이 시대 자본가계급의 전형적 모습을 한 미희의 아버지에게 「맹목적인 계급 이기주의자」운운하며 서늘한 비판을 서슴치 않던 우리의 희성은 대물림 속에서 착취자이기를 선언한 미희 앞에서 그만 이해와 사랑을 아끼지 않겠노라고 속삭이고 마는 것이다.

해결 불가능해 보이는 이 적대적 모순은 어여쁜 여배우의 미소로써 해결될 수 없는 것이다.

한편, 성대는 철학서클에서 활동한다.

그런데 성대에게 철학은 한낱 지식욕의 발산이요 장식품에 지나지 않고 있다.

가낭한 집안, 숙식마저 불안정한 생활여건, 철학서클에서의 활동, 게다가 왕성한 생활력. 성대를 돋보이게 하는 이 모든 장치는 인물 내부로 침투해 들지 못하고 오히려 무매개한 나열로써 변화 가능성들을 차단하고 있다.

이 복잡한 상황에서 여전히 진수는 주인공이라 자부하지만 불안함을 감추지 못한다.

왜냐하면 적극적으로 상황에 뛰어들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 드라마는 여배우들의 교체 등장만으로 시청자의 관심을 유지하고자 하고 있다.

선수와 미수에게로 시선을 옮겨 봐도 여전히 문제점이 드러난다.

이 시대 고등학생의 모습이 학원과 여자친구만으로 매도되어질 수는 없는 일. 신촌의 레스토랑에서 제주 4·3사태를 이야기했다는 것만으로 경찰서에서의 하룻밤 추궁을 감당해야 하는 우리들 동생들의 현실을 보여 주십사 하는 것은 지나친 바램일지 모르지만 해직된 선생님들에게 여전히 사랑함을 눈물로 호소하는 수천, 수만의 동생들은 모두 어디로 갔는지 안타깝기 그지 없다.

선수, 미수의 구체적 학교 생활에서 소박하나마 문제의식을 포착하기를 바라는 것이 지나친 바램은 아닐 것이다.

현실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각이 더 적극적이고 더 객관적이어야 한다는 것이 내 하고픈 말 전부임을 변명처럼, 그러나 당당하게 고백하며 한마디만 덧붙이고 싶다.

사회의 발전과정과 더불어 문화예술 또한 매체의 발달을 거듭하였고 이제 TV는 가장 광범위한 대중문화매체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기에 더더욱 방송관계자의 사회적 책임 의식이 요구되는 것이며 흥미 위주의 촉각적 프로그램을 서둘러 지양하고 굴절되지 않은 객관적 시각으로 대중문화를 이끌어 나가야 할 것이다.

「우리들의 천국」은 천사의 하프소리 영롱한 하늘 저편에서 찾아질 수 없으며 혼란과 모순으로 점철된 이 시대, 이 땅에서 개척되어야 함을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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