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인 아닌 죄인, 사상범의 이야기

『철크덕, 철크덕』 신경을 자극하며 울려대는 감방의 쇠철창소리에, 그리고 푸른 수의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나와는 영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들 상상으로도 만들어볼 수 없는 생활이 너무나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김하기의 단편소설집으로 「완전한 만남」은 8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나가면 마치 한편의 장편소설같은 느낌을 받는다.

수많은 인물이 등장하지만 그들이 있는 공통된 장소는 감옥, 그것도 0.75평에 3·40년을 살았고 앞으로도 살아가야 할 장기수들의 터전이다.

남의 것을 훔치지도 않았고, 거짓말을 하지도 않았다.

그들의 죄명은 똑같이 「빨갱이」였다.

사회에도 전혀 알려지지 않고, 그들만의 고통과 그들만의 완성된 세계를 구축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육신은 어둡고 습한 독방에 있어도 그들의 영혼은 고향과 백두산, 한반도 그리고 독립운동을 하던 만주벌판까지 날아다니고 있었다.

흔히 이런 소설은 「감동이 없어」라고 치부해 버릴 수 있다.

그러나 김하기의 소설은 매우 감상적이기도 하다.

거부감없이 다가오는 조국의 문제, 통일에 대한 열망이 있기도 하며 개인의 사랑, 자식으로서 아비로서의 정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전향을 강요당할 때마다 그들의 의지는 더욱 굳건해졌다.

「살아있는 무덤」에서의 박석기선생은 전향을 강요하는 고문속에서 자신이 만든 죽음의 미학이 현실으로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이 땅의 어둠의 아들들아, 너희들이 날 이렇게 고문하지만 네들도 간악한 미제와 그 하수인들의 희생물들이다.

이렇게 철모르고 미쳐 날뛰며 고문하는 너희들도 실상은 고문당하고 있는거야. 너희들의 배후에서, 아니 배후의 배후에서 같은 동포를 이간질하고 형제가 형제를 죽이게 만드는 하얀 손들이 네놈들의 명줄을 졸라매고 있다는 걸 명심해야 돼… 그 폭력과 폭압의 크기만큼 그들의 논리는 패배하고 있는 거지』 고문을 하는 떡봉이들을 향하여 외쳐대는 그의 정신을 이해하는 자는 갖힌 자 뿐이었다.

새해를 맞아 불러보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에 돌아오는 것은 무수히 쏟아지는 몽둥이와 발길질 뿐이었다.

「완전한 만남」의 송준호는 목적 의식과 핏줄이 하나가 되고 과학과 감정이 통일되는 만남을 기대했지만, 십여년만에 만나는 어머니 앞에서 목놓아 울다가 그 소리를 들은 옆집 이장의 고발로 붙잡혔다.

그는 가족주의적 봉건이데올로기를 벗어나지 못했다고 자학하나, 그 한번의 만남이 가슴을 열고 만난 진정한 만남이었음을 깨닫는다.

김하기는 강요하지 않는다.

작품 속에 어느 사상범도 자기의 이념을 남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오직 생각과 질문과 대답 속에서 스스로 답을 찾아간다.

분단 극복이란 어려운 명제를 인간애라는 가장 근원적이고 정적인 것에서부터 풀어나가려 한다.

그의 작품 속에서 정치사상성과 문학이라는 예술성이 합일되었음을 볼 수 있었다.

또한 역사란 민중이 주인이며 현재를 만들어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수많은 편견 속에서 살고 있다.

가장 평범한 민중 그 자체일 수 있는 장기수들이 사상이 다름으로 해서 평생을 감옥에서 보내고 있다.

그리고 대한민국 헌법에는 이렇게 쓰여있다.

『누구나 사상의 자유를 갖는다』고. 지난 21일 예순네살의 정대철이란 장기수가 35년 5개월을 감옥에서 보내고 나온 후 1년여만에 자살했다.

51년에 빨치산으로 무기징역, 77년에는 사회안전법으로 다시 수감, 그후 89년 9월에 사회안전법 폐지로 나왔으나 한산도에서 자살했다.

그리고 「내가 죽은 자리에 그대로 묻어주고 잣나무 한그루를 심어 달라」란 유서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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