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대머리 여가수」를 보고

대화포기한 단절된 인간관계 묘사 연극 「대머리 여가수」를 보고 『대머리 여가수는?』밖으로 나가려다 말고 소방대원은 이렇게 물어본다.

그러자 한여인이 『왜 늘 똑같은 머리모양을 하지요』의심스럽다는 듯이 심각한 어조로 대답한다.

이때 관객은 잠시동안 고개를 갸웃거린다.

무대는 좌우대칭을 꽤 고려한듯, 그러나 지루하지 않도록 배치된 2인용 의자가 전부이다.

막이 오르는 과정없이 이미 노출되어버린 무대, 이윽고 한 부부가 나와 앉는다.

그리고 초대받은 또 다른 한쌍의 부부가 등장, 하녀가, 마지막으로 소방대원이 무대위에 나타난다.

몇 토막의 에피소드로 꾸며진 이 희극은 자목 제목과 무관하게 전개되는 것처럼 오인받는다.

거의 의사소통의 의미를 상살한 부부의 말장난과 같은 대화, 논리는 고사하고 허무맹랑하기까지한 이야기들, 또 같은 단어의 반복이 불러일으키는 기계적인 이미지, 무의미한 자기의 언어에만 몰입하여 대화를 포기한 아우성들이 때때로 극 곳곳에서 관객으로 하여금 웃음을 터뜨리게 한다.

그러나 칠흙같은 밤이라기 보다는 날은 샛으나 안개가 자욱이 낀 거리에서 있는 듯한 의아심이 여전히 고개를 디민다.

마침내 「대머리 여가수는 늘 같은 머리모양을 하지요」라는 질문과 응답이 주어지면서 비로소 관객은 안개낀 거리에서 한 불빛을 발견하게 된다.

단순히 생각해 볼 때, 이 극의 주제를 단지 「부부간의 대화의 무의미성과 단절됨」이라고 단정지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오네스코의 의도는 한층 함축적으로 보인다.

부부에 국한되지 않은 폭넓게 확장된 인생생활전반에 걸쳐있는 관계들이다.

그는 『그대들은 진정한 대화의 즐거움을 만끽한다고 아직도 자부하는가?』를 끊임없이 묻고있다.

그러나 관객은 무대에서 벌어지는 장면들의 주인공이 바로 다름아닌「자신」이라는 사실을 발견해 내고는 이내 울수도 웃을수도 없는 묘한 심정이 되고만다.

신문을 샅샅이 훑어보는 남편옆에서 아내는 뜨개질을 하면서 대화를 시도한다.

식탁과 음식에 대한 그녀의 장황한 독백에도 불구하고 남편은 쪼각쪼각 신문을 접어가며 자긴의 일에만 몰두한다.

대꾸없는 대화의 우스꽝스러움이 여실히 드러난다.

언제나 공간을 공유하며 공용하면서도 낯선 타인일수밖에 없다는 허탈한 결론이 두 번째 에피소드이다.

그 과정에 반복되어지는 문장들과 단어는 로보트를 연상시키는 배우 동작의 과장됨과 더불어 기계적이고 경직된 현대인의 모습을 그려낸다.

또 아비규환을 방불케하는 네사람의 싸움아닌 싸움을 통해서 자신을 투영해 낼 지도 모른다.

오로지 자신의 이야기만이 최고인양 떠들어대며 누구의 말도 귀기울이지 않는 것. 이제, 대머리여가수가 누구인지는 물어볼 필요초자 없이 명명백백하다.

바로 현대인이다.

작가는 그들의 일그러지고 정상적이지 못한 모습을 빚대어서 우스꽝스러운 대머리 여가수로 부른 것이다.

부조리극 계열의 대표적 작가인 이오네스코는 보여지는 세상사를 그대로 재현시키기 보다는 충격과 놀라움을 주기위해 선택된 기괴한 이미지를 통해 인간상황의 최악의 상태를 묘사하였다.

「대머리 여가수」또한 이런 작가의 정신이 엿보이는데, 상투적인 언어와 대화의 단절, 경직화·기계화되어가는 최악의 인간연습이 그려진다.

그렇지만 결코 비관적이지는 않다.

그의 말을 빌자면「예술작품이란 교리와는 상관이 없으며 진실된 것을 감지하는 표현방식을 스스로 지닌다」비록 이 극이 암울한 상태인 채로 끝나지만 관객은 이미 「진실된 것」이 무엇인지 어떤과정이 요구되는지 깨달았으므로. 극장문을 나서는 그들의 발걸음은 더욱 다부져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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