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란한 문구와 함께 시끌법적한 아우성으로 상품 선전에 전념해 왔던 시장마케팅 광고가 이미지 메이킹(image making)과 귀에 솔깃한 잔잔한 이야기를 담은 소위 「스토리광고」로 탈바꿈하여 나섰다.

「토라진 아내를 달래기 위해 주말에 자가용으로 드라이브시켜주는 너그러운(?) 남편」, 「멀리 떨어져사는 부모에게 효도하기 위해 세탁기를 선물하는 효부」, 「아픈 아내를 위해서 전자렌지로 음식을 만들어내는 모습」은 흐뭇하고 인간적인(?) 줄거리로 「아! 행복이란 저런거야」라는 그럴듯한 생각을 심어준다.

소란스런 장식으로 보는 이에게 적잖은 피곤과 짜증을 안겨주었던 광고의 홍수 속에서 이같은 점잖은(?) 광고는 소비자들 구미에 알맞게 먹혀들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행복한 생활을 누릴만큼 우리의 삶이 풍족하고 충만스럽다고 자위하게끔 말이다.

이런 「스토리광고」의 또하나의 특징은 휴머니즘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런 광고가 진정 인간을 위한 휴머니즘을 담고 있을까? 비오는 날 어린 아이가 길을 건너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때 모회사의 자동차가 멈춰 서서 길을 비켜준다.

멀어져가는 자동차를 뒤로 「작은 것도 소중히 여기는 00」라는 광고는 어린 아이를 위한 어른들의 양보의 미덕은 「자가용을 가지고 있어야만」십분 발휘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렇게 스토리광고는 생활전반에 걸쳐 가진자들의 우월함과 넉넉함을 1분 이내의 짧은 시간에 최대한 보여주면서 험난한 요즘 삶에서 진정 인간을 위한 휴머니즘은 돈으로 산 상품의 값에 의해 좌우됨을 역설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자본의 증식이라는 가진자들의 필연적인 논리는 TV매체를 통해 무책임하게 내보내지면서 거짓된 휴머니즘을 과대포장해 선전하며, 그에 의한 인간의 소외를 더욱 가중시킬 뿐이다.

소수가 누리고 있는 특권을 마치 이 시대가 요구하는 표준적인 삶인양 쇄뇌시키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물질만능주의라는 거대한 괴물의 부속품으로써 상업광고가 차지하는 위치는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와있다.

본질은 결국 가진자들의 독점체제를 확고히 하며 그들의 생명인 자본의 증식을 그릇된 매체유포로 한결 위장한 약삭빠른 「돈꾼」들의 술수일 뿐이다.

이제 우리는 그들이 무차별하게 내보내는 허위광고를 가만히 앉아서만 받아들일 수는 없다.

상품을 팔기 위해서는 어떤 수단방법도 가리지 않고 상술을 모색하는 자본가들의 계약을 수수방관 방치할 수만은 없음이다.

인간의 기본적인 정서마저도 상품을 팔기 위한 도구로 이용되고 있음을 올곧은 목적의식을 갖고 비판할 때 그런 논리가 더이상 통하지 않는건 너무나 당연한 이치이다.

이야기가 있는 광고, 행복을 파는 인간적인 광고. 단지 신선하고 멋스럽다는 이유로 마구 수용하기보다 스토리광고가 상품을 하나라도 더 팔기위한 거짓 이야기임을 간파해서 우리의 공감을 얻을 수 없음을 똑똑히 보여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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