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희 시집「여성해방 출사표」

이옥란(국어국문학과4) 세상은 참으로 많이 변화하고 발전했다.

그러나 생활 곳곳에서 우리는 반봉건적, 남성중심적 현실에 부딪히게 된다.

부엌에서, 교육현장에서, 텔레비전에서, 책에서, 취업전선에서 그것은 쉽게 자본주의적 상품가치로 전해지기도 한다.

사람들은 그러한 현실에 둔감하기까지 하다.

시집 「여성해방출사표」는 그렇듯 무감한 사람들에게, 여성을 억누르는 유형·무형의 의압에, 머리는 깨우쳤으되 마음은 여전히 규방에 갇혀 있는 여성들에게, 변혁 운동의 총체성 속에 숨은 여성운동에 던지는 문제제기이며 자기추동이다.

시인은 나름대로 여성해방의 전사를 이야이 식으로 풀면서, 1·2부에서는 조선조의 유교적인 관습에 얽매였으되 그런 한계를 극복하고자 했던 여인들-황진이,이옥봉, 신사임당, 허난설헌-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승의 현재를 들여다 보며 그들이 나누는 이야기들은 이미 얄려진 네 여인 생애를 재조명하여 현대적인 의의를 살리려는 시인의 의도가 담겨있다.

신세한탄이 아니라 오히려 당당하게 현모양처, 여필종부를 논하는 그들은 우리시대 여성해방의 전법으로 새롭게 나서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곧 조선시대 모든 여성은 아니었다.

『오늘날 그대들의 눈부신 삶이/ 어느 시대 창졸간 여자 해방의 화답으로 맺어질꼬』하며 역사이래 쌓여온 눈물과 한숨이 그들 대에 해소된 것이 아니며, 오늘을 사는 조선 여자들이 함께 일어나 실천해야할 내일임을 밝히고 있다.

시인은 YWCA 간사로, 가정법률상담소 출판본장으로, 여성신문 편집주간으로 일함녀서, 여성의 모습을 깊이 바라보고 희망을 안기는 일꾼으로서의 자기 역할을 잊지않고 있었다.

4부에 실린 기념행사시들은 그의 발자국이었다.

발길 옮기는 곳 마다에서 지나온 여성들의 가슴에 바람을 불어넣고, 「수퍼우먼이 아닌/현모양처가 아닌/효부열녀가 아닌/직장의 꽃이 아닌/순종의 미덕이 아닌/ 건강하고 당당한 여자」들로 일어설 때라고 외치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전반에 걸쳐 존재하는 차별과 억압의 의식, 구조, 그런것들을 구체적으로 밝히기에 고정희시인의 자리는 아직 비좁다.

가슴에 와닿는 감동을 안겨줄 수 있을 만큼의 구체적이고 생동한 인물형상이 없다.

각 계급 계층 여성들의 부단한 삶의 투쟁들이 적나라하게 그려지지 못하고, 「생존권 투쟁에 피뿌리는 딸들/민족민주 투쟁에 울연한 딸들/남자출세성공에 희생된 딸들」로제시할 수 있었을 뿐이다.

그런 한계가 「여자」율곡, 「여자」제갈공명,「여자」관음보살이라는 표현상의 아이러니를 가져오기도 한다.

도 하나는 생명과 인낸의 상징인 「모성」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나지 못한 시인의 의식인데, 이역시 족쇄를 깨는 여성들의 기층으로부터의 부단한 노력에 작가적인 시야로부터 멀기 때문에 생긴 전망의 빈약성에서 온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지적은 창작자로서 시인이 있어야 할 곳은 어디인가 하는 물음임과 동시에 우리 시대 여성해방운동의 질적단계와 그 반영물인 문예작품과 관련성에 대한 것이다.

『(여성)해방의 시가 조선에는 아직 없습니다』그러나 어쨌든 한사람 작가만 아니라, 새로운 살 길을 찾아 나선 우리 모든 여성들과 나쁜것을부정하는 모든 사람들이 함께 쓸 해방의 내일에 출사표는 놓아졌다.

출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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