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철학사상 연구회「시대와 철학」창간호

김수중(경희대 철학과 교수) 철학도의 한사람으로서 같은 인문과학에 속하는 문학과 역사쪽이 부러울때가 있다.

그쪽은 철학분야만큼 전통과의 단절이 심각지 않고 그래서 철학만큼 가난하진 안흔 것처럼보인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에서도 그리고 기구한 우리 현대사의 굴절에서도 문학과 현대사으 굴절에서도 문학과 역사분야는 가늘게 나마 명맥을 유지하며 자기축적을 해온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철학의분야는 사실 너무나 축적이 없으면 너무나 가난하다.

바로 십여년 전만 해도 그 유명한 철학자들은 어찌보면 「밀수업자」들이었다.

무슨 하이데거나 카르납의 최근 저작을 자기만 가지고있다고 큰소리치는데, 그의 「철학」은 민중은 차치하고 철학을 전공하는 사람들의 삶과도 전혀 무관한 것이었다.

걸국 「한국현대철학사」는 거의 공백상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의 현대철학사는 왜 그렇게 가난하고 왜곡되었을까?인간집단이 실재했고그 사회속에서 고뇌하는 사람들이 있었던만큼 철학이 없었다고 할 수 없지만, 양화는 악화에 의해서 철저히 구축되었던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제국주의와 매판자본의 억압을 뚫을만한 역량이 아직 제대로 자라지 못했었다.

따라서 현실과 호흡하며 「살아있는」철학은 이어져오지 못하고 말았다.

철학이 있었다면 그것은 화석처럼 「죽은」철학이었다.

그러나 4.19이후 싹트기 시작한 역량을 70년대 점점 성장하여 드디어 80년대에는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80년대 초 광주항쟁을 기점으로 분출되기 시작한 민중의 힘은 우리사회의 모든 분야에 새로운 국면을 전개하면서 「주체성」을 일깨우게 되었고, 철학을 하는 사람들고 당시까지의 철학이 얼마나 공허하고 왜곡된 갓이었는지 서서히 자각하기 시작했다.

근래에 발간한 「시대와 철학」창간호는 진보적 철학도들의 모임인 「한국철학사상연구회」에서 내놓은 정기(년간)간행물이다.

창간호에는 좌담과 특집 그리고 몇개의 철학논문들로 짜여저 있지만, 여기서는 주목되는 주제 두어가지를 소개할까 한다.

먼저 특집으로 「한국 현실과 철학운동의 과제」라는 큰 주제 아래 80년대 한국사회와 철학운동(이병창),마르크스주의와 인간론-주체사상의 인간론에 대한 검토(이병수), 당파성과 철학(문성원), 변증법적 결정론과 역사법칙(우기동)등의 문제가 다루어졌다.

이병창교수는 80년대 철학운동의 발생, 학생운동이 이끌어온 이론들의 철학적 배경, 강철서신의 품성론, 한국사회구성체론, 그리고 80년대 후반에 제기된 인간론등에 관하여 각각 그 철학적 의미를 탐색한다.

그는 결론적으로 『80년대의 사상적 실험과 훈련은 과거 구미로부터 불어온 사상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그들의 사상에 감읍하던 국적없는 사상의 시대를 마감하고, 그 어떤 사상도 우리의 주체적 입장에서 이해할 뿐만 아니라 스스로 새로운 사상을 산출하는데 자신감을 갖게 된 계기』로 파악한다.

다음으로 이책에서 큰 비중으로 다루어진 것이 사회주의 개혁의 문제와 주체사상에 관한 것이다.

특히 근래 전세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사회주의 개혁의 주제와 관련하여, 좌담의 주제로서 「페레스트로이카」가 취급되었을 뿐만 아니라 ,동구개혁에 관한 최근 소련학자들의 논문들도 번역되어 있다.

좌담자들은「페레스트로이카」에서 정치, 경제, 그리고 이른바 「신사고」의 측면들을 검토하고 있다.

이것은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같은 주제에 관한 철학쪽애서의 최초의 논의라고 생각되는데, 역시 일반 사회과학자들에게서 보기 힘든 심도있는 파악을 느끼게 해준다.

또 번역된 소련학자의 논문에서 페도시예프는 소련사회의 생산관계에 초점을 맞추어 그 모순점을 분석하며, 코즐로프스키는 정치·경제 분야뿐만 아니라 사회 전영역에 걸친 모순을 분석하고 그 해결방법으로 인간의 자발성을 최대로 고양할수 있는 사회적 민주주의의 관철을 강조하고 있다.

필자는 최근 독일에서 장기간 조사활동을하고 돌아온 사람으로부터 동서독이 형식적으로는 금명간 통일을 완수하겠지만, 「실질적인 하나의 독일」 이 실현되기까지 어떤 사람들은 한 세대를 잡고 있더라는 말을들었다.

사실 동구는 하나의 세계사적 실험실인 셈이다.

분명한 것은 상업주의 언론에서 야단떠는 것처럼 세계가 그렇게 단순하게 변하는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한편 주체철학에 관해서는 좌담에서 취급할 뿐만아니라 이병교수의 위의 논문, 그리고 이영철 교수의 「북한의 주체철학에 대하여」라는 논문에서도 다루어지고 있어 비교적 비중있게 논의되었는데, 이것도 철학분야에서는 처음이라 생각된다.

철학은 시대의 아들이다.

아니, 진정으로 「살아있는 철학」이라면 오히려 시대를 인도하는 나침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시대와 철학」창간호가 시대 현실과 호흡하는 「살아있는 철학」의 출발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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