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드라마 「사랑이 꽃피는 나무」

드라마 「사랑이 꽃피는 나무」가 현실과 동떨어진 사랑만 줄기차게 꽃피우고 있다.

소재나 구성의 상투성은 말할 것도 없고, 무엇보다 매회 에피소드를 구성하는 인물이 우리의 구체적 현실과 직접 관련을 갖는 경우가 무척 드물다.

무대와 등장인물을 바꾸어 출발한 최근 몇회의 줄거리를 보아도 대부분의 소재는 비정상적인 대학생의 행동, 신경질적인 인물들에 의한 감정과잉, 대학생과 삼수생과의 사소한 오해로 비롯된 대립 등 다분히 「탈현실적」내용으로 구성된다.

드라마속의 대학가이야기는 낭만과 학문, 연애로 가득차 있어 대학은 단순히 계층상승욕구를 만족시켜주고 기득권을 향유하는 곳인양 왜곡되어 있다.

캠퍼스에 최루가스가 진을치고 바로옆 학우가 돌을 맞아 피가 터지고 실명까지 하는데도 이런 현실의 문제들은 스쳐지나가듯 피상적으로 다뤄지거나 사랑문제에 파묻혀 지나가버리기 일쑤다.

드라마속에서 제멋대로이고 개성이 강하다 못해 비정상적이기까지한 학생들의 잡합소로 묘사되는 철학과의 학생으로, 학보사 기자인 수인은「현실이 제거된」꿈의 소유자이다.

또, 배우의 꿈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삶전체를 연기연습으로 착각, 온갖 어릿광대짓을 하는 정태·허무맹랑한 스타지망생 정화의 모습은 그만두고라도 애인이 없는 대학생은 하나도 없고, 학보사기자를 질투하는 정화가 남자친구를 찾아가 이간질시키는 것 한 주, 그 남자에게 다른 여자가 있는 줄 알고 수인이 상심하는 것 한주, 다시 그사람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으로 한 주를 때우는 등 건전히 못한 감상주의적 정서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마치 사랑은 모든 문제의 만병통치약이 되어 대학생의 사회참여, 진로에 대한 갈등까지도 삼켜버리는 것이다.

총학생회가 시험출제경향을 검토하고, 시험문제를 제공하는일에 열중하거나 가면무도회를 주최하는 장면은 현재의 대학 총학생회의 위상조차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작자의 의식을 의심케했다.

딱한 노릇이 아닐수 없다.

또, 학보사기자가 하는 일이란 학내 사소하고 웃기는 일이나, 카니발, 미팅등을 신나게 취재·기사화하는 것이 고작이다.

사실 지금이 어떤 시기인가. 각 데학언론에 대한 탄압이 노골화되고, 하루가 다르게 대학언론에 몸담고 있는 학우들의 손발에 족쇄가 채워지고 있는 때가 아닌가. 지금의 학내의 크고 작은 소식솨 미담들을 발견하여 즐겁게 취재하고 소개하는 것만으로 대학언론의 임무를 다했다고 말할 수 있는 충분한 시기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지금은 프레스에 손가락이 잘리면서 뼈빠지게 일을 해도 자본가와 권련에 권리를 빼앗기고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노동형제가 수없이 많은 현실이며, 모두의 인간다운 삶을 막고 있는 외세와 군부독재를 물리치기위해 학생 스스로가 주체가 되어 싸우고 있는 때인 것이다.

결국 이 극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대학의 왜곡된 환상을 심어주는 한편의 구태의연한 드라마일 뿐이다.

물론 대중에게 사랑받는 드라마는 좋은 드라마이다.

그너라 좋은 드라만ㄴ 병든 세상을 치유할 수 있어야 한다.

현실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진지함에서 출발하지 않는 드라마는 우리가 보아야 할 현실의 아픈 모습을 가리워버린다.

눈과 귀를 좀더 크게 열자. 드라마의 주인은 드라마의 창조자가 아니라 드라마의 향수자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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