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여행이었지만 큰 보람 안고 왔어요"

유럽은 이제 유럽인들만이 소유하지 못하는 곳으로 어디를 가나 세계사람들의 물결로 덮여 있다.

그렇기에 관광정책이 서로 연계를 이루어 잘 발전되어 있고 홀로 떠나는 온세계의 가난한 여행객들에게는 가장 먼저 도전해 볼 만한, 더없이 좋은 여행지이다.

나자신도 혼자 떠났었지만, 혼자 다녔던 적보다 그곳에서 만난 친구들과 길동무가 되어 같이 다녔던 시간들이 더 많았다.

우리가 매일 TV와 신문의 사회면 기사들을 놀라며 접해오는 동안 필요이상 남을 경계하며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스스로 하고픈 일들에 한계를 정해 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인지 많은 사람들이 내게 질문하기를 혼자 다니기 무섭지 않느냐, 유괴당할 염려는 없느냐 잠은 어디서 자느냐 등등을 매우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어오곤 한다.

물론 낯선 나라에 첫발을 내디딜 때는 비행기 안에서의 기대감과 신비감보다는 언어에서부터 느껴야 하는 이질감 때문에 불안하기도 하다.

그러나 하룻밤만 지나도 매일매일 새로운 것들을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으며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이 일상의 즐거움이 된다.

유럽지도를 펴보면 그때의 나의 일정이 노란색의 선이 되어 색칠해져 있고 그곳들을 손가락으로 따라가다 보면 추억이 되어 떠올려지는 것들이 많다.

유럽은 교통비가 무척 비싸므로 준비해갔던 영국철도패스와 유레일유스패스는 혼자라는 장점을 살려 기동성있게 보다 많은 곳들을 돌아 볼 수 있게 해 주었다.

영국을 떠나 유럽여행에서 꼭 올라야 되는 정상같이 여겨지던 파리에 도착하니 밤중이었다.

그 다음날 나는 소르본느 대학 근처의 숙소를 떠나 수없이 사진과 그림으로 보아왔던 파리 시내의 명소들을 거의 9시간 동안 일일이 걸어서 돌아보았다.

배고프고 지쳐오던 저녁 무렵 긴 바게트빵을 사가시는 아주머니의 뒷모습이 보기 좋아 충동 저녁식사 구입을 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힘나게 하는 보배의 영양식마냥 반가움을 꼭꼭 씹으며 맛있게 먹었다.

그러나 전날 남긴 바게트를 아침식사로 먹을려고 하니 어느새 빵덩어리가 돌덩어리로 되어있었다.

어떤 사람은 먹다남은 바게트를 다시 봉투에 넣고 밤에 베고 자기까지 한다더니 그 말이 실감나게 느껴졌다.

니스에서 로마로 갈 때 나는 처음으로 밤기차를 탔다.

도둑들로 악명높은 로마행 밤기차였으므로, 입고 있던 잠바를 베낭 위에 덮어 베개 대용으로 만든 뒤 목걸이 지갑의 안전을 위해 옷속 깊이 집어 넣고 엎드려서 잠을 잤다.

덜렁대는 성격이지만 제법 주의를 하고 다녀서인지 이탈리아를 떠나는 날까지 잃어버리는 것 없이 볼 것 많은 이탈리아 곳곳을 돌아보았다.

물가가 비싸기로 유명한 스위스에서 예정과 달리 거의 모든 도시들을 다 들러볼 수 있었던 것도 TGV에서 만났던 마리따의 도움으로 숙박비와 식비가 거의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낯선 이에게 베푸는 그들의 친절이 아쉽고 부족한 것이 많은 나에게는 거의 자연을 통해 얻는 감동 이상으로 느껴질 때가 많았다.

연달아 4일을 밤기차를 이용했었던 적도 있었다.

시간과 숙박비를 절약할 수 있었지만 12시까지 기차역에서 기다려야 한다거나 중간에 기차를 갈아타야 하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했다.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를 넘나들다 4일째는 아침에 부다페스트에 도착했다.

무척 피곤해 있었으므로 도착 즉시 공중 목욕탕부터 찾았다.

헝가리는 보통 민박을 해야했고 5시 이후에야 들어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가가 싸다는 말은 들었지만 안내소에서 표시해준 곳을 찾아가니 큰 호텔 목욕탕이었다.

그래도 호텔인데 얼마나 비쌀까하는 걱정에 문밖에서 머뭇거리다 이것도 한번뿐이다 싶어 문을 열고 들어갔다.

나는 그날 단돈 600원에 어마어마한 규모와 시설에서 장장 2시간 동안 잠까지 자고 나왔다.

그러나 서양식 목욕탕 문화에 익숙하지 못했던 나는 만반의 준비를 갖춘다고 가져간 야광 이태리타올과 등 미는 타올로 인해 그때까지의 경우와는 달리 완전히 주위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영광 아닌 영광을 누려야 했다.

미지근한 한쪽 탕에선 많은 할머니들이 수영을 하고 계시고 아무리 기다려도 까만 머리는 혼자여야 했다.

기죽지 않고 이태리 타올을 열심히 사용했지만 샤워만 하고 나가는 사람들에게 차마 등 좀 밀어주시면 시원할 것 같다는 말까지는 차마 할 수 없었다.

1천원 정도로 오페라와 콘서트를 A석에서 볼 수 있었다는 것도 헝가리에 머무는 동안 매일 기다려지던 작은 기쁨이었다.

오스트리아 비인에서도 유명한 오페라극장에 7백 50원짜리 입석표를 겨우 구해 들어 갔다.

자기 자리표시를 하기 위해 준비해 갔어야 하는 손수건이 없어 옆사람의 목도리를 내 쪽까지 끌어다 놓아야 겨우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무대를 보았는지 사람들 머리만 보았는지 다리는 아프고 고생스러웠지만 성능 좋은 귀로 듣기는 잘 했으니 싼 가격에 음악의 도시에 온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혼자 떠난다니까 불러다가 독일에 사는 아는 유학생들의 명단을 앞뒤로 써 주시던 분이 계셔 마지막 여행지였던 독일에서는 어디를 가나 집과 같은 평안함 속에 자세히 이해하며 살펴볼 수 있었다.

매일 매일의 자질한 일상을 보내면서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큰 문화권에 가서 보고 느낀 뒤 더 열심히 살아가야겠다는 다짐을 몇번이나 하면서 서울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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