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 우리가 읽고있는 책을 점검한다

많이 팔리는 책이 좋은 책이라는 논리는 이미 깨어진지 오래다.

이제 취미가 독서라고 말하는것이 부끄러울 정도로 독서는 생활화 되었지만, 『일단은 복잡한 세상을 뒤로하고 삶의 묘미를 말장난처럼 적어놓은 책들을 쉽게 대하게 되고 막연한 회구와 동경같은 것을 느끼게 되죠』라는 배정선양 (행정·2)의 말처럼 너무 쉽게 닥치는 대로 책을 일고 있는게 사실이다.

그렇다면 우리시대 사람들은 무엇을 읽고 있을까? 시내 한 서점의 7월 세째주 가장 잘 팔렸던 책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세계를 가슴에 안고」(이영호),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박완서),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송정연), 「내아들아 너는 인생을 이렇게 살아라」(필립체스터필드), 「물위를 걷는 여자」(신달자), 「죽은 시인의 사회」(클라인다움), 「비오는 날의 수채화」(곽재용), 「사랑한다는 말보다 더욱더 마음절이는 것은 작은 웃음이다」(서영은), 「공포의 유령대소동」(김영훈외), 「0에서 하나까지」(유안진외) 소위 잘팔리는 책은 소설·시·수필류가 거의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좀더 자세히 살펴보자. 90년 상반기에 가장 인기가 있었던 소설은 이문열의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의 경우 자본주의 사회의 그릇된 애정관으로 물의를 빚었고, 여성운동을 표방했다는 박완서의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나 신달자의「물위를 걷는 여자」, 김준성의 「먼 시간속의 실종」등도 감상적이고 왜곡된 인생관을 심어줄만한 줄거리들이지만 평가와는 무관하게 인기를 누리고 있다.

시·수필류는 눈에 띄게 잘 팔리는데, 서영은의 「사랑한다는 말보다 더욱더 마음절이는 것은 작은 웃음이다.

」, 이상규의 「사랑의 비문」박렬의 「만남에서 동반까지」등 시집류는 사랑과 이별-표제에서도 알 수 있듯이-의 주제가 시집의 전형을 이루고 있다.

필립스쳅터필드의 「내아들아 너는 인생을 이렇게 살아라」, 유안진의「0에서 하나까지」,김우중의 「세계는 넓고 할일은 많다」등 손꼽히는 수필은 처세술이나 돈버는 방법등 저속한 글들이 많고, 작가가 보는 세계관과 시각을 그대로 드러내어 현실문제를 망각하게 하고 방관·외면하게 한다.

이러한 소위 잘팔리는 책들은 사람들을 철자히 흥미와 오락을 추구하고 문학적 관심과는 괴리되게 하며, 사회·정치적 현실에서 멀어지게 한다.

이 사실은 문학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작가와 작품들, 사회과학 서적들이 소외되고 있다는 사실로도 짐작할수 있다.

그예로 문학평론가들이 선정한 80년대 대표소설-「태백산맥」, 「무기의 그늘」「깃발」,「친구는 멀리 갔어도」등이 베스트셀러 대열에서는 거의 찾아볼수 없거나 겨우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만이 후미쯤에 끼어 있었다.

이같이 독자의 양적 증가에 비해 질적 수준의 저하 경향이 나타난 원인을 훑어보면, 우선 독자들이 책을 선정하는데 있어 내용보다는 눈에 띄는 표제나 화려한 문제와 감각적 언어에 의해 가볍게 선택하는 데서 그 이유를 찾을 ㄳ수 있다.

김문정양(정외·2)은『사랑과 슬픔을 주제로 한 서정시나 수필에 먼저 손이가고 찾게되는 것은 자라면서 길들여진 지배 이데올로기 교육의 역할도 무시할수 없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한다.

또, 독자들의 문학적 소양을 지적할 수 있는데, 이런 부분은 김지윤양(특교·3)의 『감상적 시나 수필이 편안함과 재미, 환상만을 주고 실천이 필요치 않아서 사람들이 심리와 묘하게 맞아떨어지고 있어요』라는 말에서도 잘 나타난다.

수필이나 시류는 정신적 여유의 산물이라고 흔히들 생각하고 있어서 취미와 격조를 자유롭게 누릴 수 있는 장르라는 점이 독자들로 하여금 손을 뻗게 하는 또하나의 이유인데, 이것은 복잡하고 암울한 현실에서 정신적 유희속으로 도피하려는 심리를 잘 부추기고 있으며, 지배이데올로기가 강고하게 대중에게 침투할수 있는 발판을 만든다는 점도 인식되어야 한다.

이른바 탈정치, 탈이데올로기의 현상으로 베스트셀러 현상이 파악되어야 하는 것이다.

또다른 원인으로는 문학운동내에서 문학의 대중성을 얼마나 담아앨수 있느냐의 문제이다.

진보적 문학작품이 선동성 탓으로 내용에 비해 대중과의 조화가 미흡했던 점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시대 우리가 읽는 책은 그 양적 수준에서 평가될 것이 아니라 질적 수준에서 가름되어야 한다.

사회적·정치적 현실을 외면하게 하는 잘팔리고 많이 읽히는 책들이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음을 지금까지 지적 하였다.

『과다한 선전매체의 책 광고와 베스트셀러현상속에서 어쩌면 우리는 책을 선택하고 읽을 권리마저 박탈당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라는 임상희 (과교·4)양의 말은 우리의 잘못된 문학현실을 꼬집는 의미심장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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