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란 기본적으로 일상에서 야기되는 갖가지 갈등을 해소하고 새로운 삶을 이룬다는 의의를 갖고 있다.

대학의 축제는 사회가 처한 상황에 따라 대학인의 정체성 및 대학문화의 의미와 그 실현을 찾는 일에 문제의식을 갖고 변화해 왔다.

오늘날 우리의 축제는 진정한 우리를 회복하고 내일을 준비하는 결속과 자기 확인의 축제, 진정한 대학문화의 운동 연장선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80년대의 이화 축제에 대한 고민과 반성을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이화의 축제는 1908년 5월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5월의 여왕 대관식과 운동회 등으로 시작된 행사는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1970년대 중반까지 계속되었다.

또 1962년에는 4·19라는 시대와 역사의 격동기 속에서 아픔을 짊어지고 고뇌하는 대학인의 모습이 투영되지 못한 채, 서구적인 카니발 형태로 쌍쌍파티를 열었는데, 꽤 인기를 끌기도 하였다.

심지어 D일보사는 헬리콥터에서 꽃다발을 내리는 축하로 먼지바람을 일으키기도 하였으며 아무나 들어올 수 없었던 교내에는 암표가 성행하였고 학교 앞 양장 가게에는 화사한 옷들이 이대생 누군가에 입혀져서 선을 보일 것이라며 한 몫 잡기에 여념이 없었다고 한다.

이러한 축제는 낭만이라는 허울을 쓰고 소비와 향락 속에서 서구문화를 맹목적으로 추수하는 경향으로 기성인들의 쇼와 별반 다르지 않는 대학문화를 양성했다.

이는 1970년대에 들어오면서 비판을 받았다.

1970년대에는 민족적 정서 회복과 시대와 사회 문제를 함께 풀어나가는 실천적인 장으로 축제를 모색하였다.

그러나 유신체제 아래 학생회가 폐지되고 학도호국단 체제로 편성되면서 외부로부터 상당한 압력을 받아 자율적인 축제를 창출하지 못했으며, 1980년에는 광주항쟁·계엄령·휴교령 등의 강력한 조치로 대학 활동이 규제되어 축제 행사를 하지 못했던 경우도 있었다.

한편 1983년 가을 단대 축제에 처음으로 대동놀이를 시도하였다.

교내 곳곳에서 길놀이를 시작하여 대운동장에서는 수천 명의 이화인들이 한데 어울려 민요가락에 덩실덩실 춤을 추어 새로운 활력의 축제를 창출하였다.

우리 대학인의 현실에 맞지 않는 축제를 바꿔 "모두가 하나"라는 大同의 의미를 창출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고 현실에 대한 주체인의 각성과 모색한 것이다.

이윤추구에 의해 상품화된 축제문화가 일방적인 소비를 강요하는 데 반하여, 전통과 생활현장의 자생적인 공동체 문화의 한마당으로서 축제를 일구어 나가기 위해 갈등과 대립을 지양하고 새로운 질서가 나타나길 기원했다.

또 힘겨운 삶을 놀이로 풀어 용기와 단결을 북돋우는 신명풀이의 마당을 열기도 했다.

노래굿, 상황극, 탈놀이, 풍물놀이, 땅뺏기 놀이, 사박자 춤, 해방 춤, 차전놀이, 줄달리기 등 여러 가지 놀이형태를 통해 "한바탕의 흥겨운 놀이로서 모든 것이 한데 어우러져 억압된 피로와 恨을 표출하고 인간·자연·사회의 갈등과 대립을 해소하여 당당한 주역들이 되어 다시 삶의 현장에서 새롭게 움트고자 하는 계기"로서 그 의미를 찾고자 하였다.

이러한 과정에는 극복돼야 할 문제점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오늘날 우리에게 공동체로서 공감대를 형성하려 했던 많은 시도와 가능성, 그 열정을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인간다운 공동체를 건설하자는 축제마당은 집단적 신명놀이를 하고자 하였다.

대학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그 주체로서 일어섬을 획득하는 놀이판을 열고자 노력했고 대학이 안고 있는 오랜 고뇌와 우리 삶과 바람을 한데 뭉쳐서 하나가 되고자 하였다.

진정 우리들의 놀이는 소수만의 참여나 자기 만족적인 카타르시스가 아니라, 전통문화가 애호가들만이 즐기는 골동품이 아니라, 놀이가 사치적 낭비가 아니라, 미래를 창조하는 역동으로 문화운동의 참 뜻을 찾고자 하였다.

우리들의 생활 속에서 쌓인 경험과 역량을 통해 스스로 일어서고자 하는 노력으로 생활과 놀이, 예술이 삶의 확대 놀이판으로서 역사와 함께 발전하는 진정한 문화이고자 했던 것이다.

(1984년5월28일, 이대학보769호 8면, 『우리시대의 놀이와 축제-대동놀이의 현대적 수용을 위하여』, 1985년5월27일, 이대학보797호 8면, 『쌍쌍파티에서 대동놀이까지』) 이러한 과정에는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의 밥그릇을 채우기 위하여 자기의 밥그릇을 내어주길 주저하지 않으면서 공동의 선과 삶을 이루기 위한 원칙을 찾고 그 원칙 속에서 싸웠던 많은 이화인들·선배·후배들이 있었다.

지금도 때로는 거름이 되고 밑 불이 되어 어느 곳에든지 어떤 순간이든지 날마다 새로 내딛는 그들의 걸음이 있을 것이며 또 때로는 달리는 이들에게 향하는 박수와 응원이 되고자 하고 이 땅의 役事를 일구는 소망으로 어느 뒤안길에서든지 이곳 저곳에서 소중한 꽃을 피우고 있는 이화인들이 있을 것이다.

이 모든 이화인들이 운동장에서 한데 어울려 춤을 출 수는 없다하더라도 이들의 꿈과 정신이 우리들의 축제에 피어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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