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 너 거기 있느냐?> 愛國 以前 政治 以前의 自由를 위해 마지막 간직했던 것을 총부리 앞에서도 지킨 것 뿐이었노라. 어느사인가 生命보다 貴한 것을 盜難 당했고 그래서 나는 거짓의 벙거지를 쓰고 춤을 추고 있던 내 自由를 스스로 고발한 것 뿐 이었노라. 나라를 저마다 위해 왔다던 수두룩한 愛國者들. 그들의 이름을 나에겐 붙이지 말어다고. 政治家도 革命家도 아닌 가난한 이 나라의 學生이었을 뿐. 스스로 택할 수 있는 것. 여기 永遠한 平和를 안고 누어 있노라. 自由. 完全한 自由속에서. - 姜明子(當時, 梨大 佛文科 助敎), 『碑文』.(이대학보 檀紀4293年 5月 23日, 六면) 위 글은 천구백 육십년 四월 十九일을 겪고 난 뒤, 이대학보에 실린 詩이다.

이 詩뿐 만 아니라 “…前略…아- 아깝게/그 순한 넋들이 먼저 피를 흘리며/앞장 서 가야 했구나/단 한번 뿐인 하늘인데//…中略…참된 목숨은 오직 자유속에서만 피는/꽃송이//…後略…”(최병오, 당시 영문과 삼년, 이대학보 단기 4293년 5월 9일, 二면)에도 四一九 영혼들을 위한 弔詩가 실려 있다.

당시, 自由를 향한 넋들 앞에 머리를 숙이지 않은 이가 몇이나 되었으랴! 1960년 4월 19일 이후 서울에 “梨大生하고는 戀愛도 안하고 結婚도 안한다”라는 말이 퍼졌다고 한다.

當時, 사회학과 2년, 이덕희씨는 『새로운 歷史 앞에 서서-眞正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이대학보, 단기4293년 5월 9일, 2면)라는 제목아래, “우리는 戀愛를, 結婚을 못할까 겁이 나서가 아니라, 정말로 빛나는 우리 梨花의 歷史와 傳統을 위하여, 더 나아가선 새로 세워질 이 민주국가의 터전을 더욱 굳건히 하기 위해서” 당시의 사정을 서술하며 구체적인 실천을 제시하고 있다.

그 일면을 다음과 같이 재구성해 보았다.

他大生 : 이대생은 참가하지 않고 무엇을 했지? 이대생 : 80명이나 참가를 했고, 연락원이 다른 학생들과 연락이 되지 못했지, 뭐. 他大生 : 흥! 그나마 옷을 톡톡 털며 지나갔겠군. 이대가 데모 안 하기를 잘했어. 왜냐구? 글쎄, 이대가 데모를 했더라면 패션 쇼 같았을 테니까. 이 글을 쓰면서 이덕희씨는 ‘時代의 孤兒’라는 부끄러운 명칭을 떨쳐 버리기 위해, 우선 열 손가락을 쭉 펴고 들여다보라고 한다.

일을 해야 할 젊은이의 긴 손톱과 몸차림에 대하여도 지적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당시 사회로부터 호된 비난과 질책에 대하여 스스로 얼마만큼 自省하고 있는지 잘 반영해주는 글이다.

이로 말미암아 ‘현모양처의 양성소’라든가 ‘진선미를 갖춘 얌전한 여인’의 이미지를 탈피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그 일환으로 검은 치마와 흰 블라우스만을 착용하자는 운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또 <4.19세 부치는 또 하나의 글>(『來日을 주시하련다』, 장순옥 글, 이대학보, 단기4293년 5월9일, 3면)에서는 ‘학생들의 항거가 개혁에까지 이르게 된 것은 우리 국민 전체가 참여’했기에 가능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젊은 학생들이 목이 터져라 하늘을 향하여 외치는 밖에 별 도리가 없었던 역사와 ‘오랫동안 세계사의 흐름에서 무시당했음’을 지적한다.

따라서 세계 속에서 동등한 주권과 자유를 찾기 위해 학생들은 더욱 분발해야 함을 力說하였다.

이런 4.19에 대해, ‘반민중적, 반민주적 독재’에 반대하여 온 민족이 분연히 일어선 역사적 사건으로 규명하고, 지난날의 상황과 결코 무관하지 않는 당시 상황 속에서 제 3세계 지식인과 학생 운동의 당면과제와 그 연속성을 찾고 있는 1980년대 초반의 기사도 눈에 들어온다.

역사의 발전은 “자신의 위치를 기득권 유지의 수단으로 삼지 않으려는 갈등이 시작될 때부터”라고 한다.

(엄명숙(당시 사회 83년 졸), 4.19기념 에세이, 『이화(梨花)! 너 거기 있느냐』, 이대학보, 1983년 4월18일) 이렇게 하여 80년대 많은 대학생들은 학생문화의 지향과 ‘기득권’ 문제에서 개인의 정체성을 찾고자 많은 갈등과 고민을 하였음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지난 과거 수십 년 전의 사회 환경은 오늘날 여러 환경과는 많이 다르다.

어떻게 보면 이념과 인식이 동떨어진 느낌을 가질 수도 있다.

그러나 가만히 들여다 보라. 정리 없이 흘러 보냈던 개인의 시간들, 눈이 부시게 피었다 지는 꽃들 사이로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얼굴들, 수많은 다양성과 차별성, 갈등 속에서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노력했던 과정이 어떻게 얽혀 있던가? 2004년 4월19일은 우리에게 어디에 있어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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