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가, 무엇을?
사랑하는가, 무엇을?
  • 전소연
  • 승인 2004.03.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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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이가 기억하는 나는 지금의 내가 아니다.

이 말은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다른 남자애들처럼 신체 및 지적인 부분에서 성장이 있었다.

내가 힘주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삼 년이 지난 시간 동안 상황이 달라졌다는 뜻이다.

지원이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내일 만나게 될 그들에게도 그 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같은 대상일 수 없었다.

할 수 있다면 그 때의 나를 각인시키고 싶다.

그녀에게 그 정도가 더 간절했을 뿐, 이 마음은 그들 모두에게 원하는 바였다.

난 지금의 그들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예전의 낯익은 모습과 지금의 새로운 얼굴 사이에서 익숙해지기 위한 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도 지금의 나에게서 낯익은 모습을 끌어올 수 있으리라 기대하지는 않는다.

아니 일단 지금의 나를 알게 되면 애초에 그런 노력을 하려하지 않을 것이다.

나조차 중학교 시절까지의 나, 아름다운 시절의 나와 삼 년이 넘는 시간을 거쳐서 남은 지금의 나를 다른 존재로 바라보고 있다.

과거의 나는 별개의 사람이다.

돌아가고픈 노스텔지어의 표상이다.

그리고 그 표상은 그녀가 있어 완성될 ? ?있었다.

지원이를 비롯한 그들의 기억에는 전교 일 등을 놓치지 않는 반장이 서 있다.

너무 평범한가, 공부 잘하는 모범생 반장. 그러나 거기에 그 반장 집안이 만만치 않은 재력을 자랑한다면? 반장은 자신의 두둑한 지갑을 함부로 자랑하지 않았다.

그러나 어머니가 등하교를 위해 자가용을 끌고 오는 것을 굳이 마다하지 않았다.

운동화는 나이키 리복 등의 최신형 농구화가 시즌마다 바뀌어 신겨 있었다.

몇몇 아이들은 반장 어머니가 몰고 다니는 자가용 기종을 보고, 몇몇 아이들은 그가 자주 갈아 신는 신발의 종류를 보고 그 재력을 알아보았다.

학교 선생님들은 스승의 날 회식 자리에서 그의 어머니를 만난 자리에서 그의 어머니를 통해 비슷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학교에서는 그 반장의 아버지가 알짜 중소기업을 운영한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소문은 정말 몇몇 아이들이 반장의 집에 놀러가게 됨으로써 믿을만한 것으로 판명 났 . 한동안 그 소문을 뒷받침할만한, 그 집안을 채우고 있는 최신식 가전제품 및 고가구에 대한 설들이 오고갔다.

여기에는 사실 과장도 조금 있었다.

그러나 그 소문 중 절반만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이미 반장은 그들과 처음부터 조금은 다를 수 밖에 없는 사람이 되었다.

이것은 그에게도 나쁘지 않았다.

그는 맺힌 것 없는 성품을 지니고 있었다.

그 는 친구들 사이에서는 밝고 배려심 있는 사람이었다.

다만 지원이라는 여자애 앞에서는 어딘가 행동거지나 말투가 어색하였다.

크게 문제될 일은 아니었다.

반장은 중학교를 졸업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사를 하였다.

그 곳에서 그는 더 이상 반장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 주위에는 이전과 달리 자신과 비슷한 아이들이 많아졌다.

그의 아버지는 그 때 가장 바빴다.

그의 어머니도 가장 바빴다.

계절마다 카펫 및 가구, 벽지 등이 달라져 있었다.

그와 그의 아버지는 어머니의 취미를 나무라면서도 옷을 갈아입듯 집안이 바뀌는 모습을 은근히 재미있어하기도 했다.

"엄마 오늘 잔업 있어서 늦게 올지도 몰라. 밥 잘 챙겨먹고 문단속 잘하고 있어." 어머니가 현관문을 여닫는 소리가 난다.

여기서 별로 내키지 않는 이야기를 덧붙여야겠다.

그 뒤로 반장은 이사를 한 번 더 하였다.

첫 번째 이사를 하고 일 년이 좀 넘어, 그의 가족은 두 번째 이사를 하였다.

그의 아버지는 거기에 없었다.

아버지 때문에 이사를 하게 되었는데 당사자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이유로 책임을 회피하고 있었다.

사인은 약물 과다 복용이었다.

그 뒤로는 순식간이었다.

실은 알짜 중소기업은 오래 전에 이미 속 빈 강정이 되어 있었다.

빚을 갚고 남은 돈으로 아들과 어머니는 그에 걸맞는 집으로 두 번째 이사를 한 것이었다.

나에게는 살 수도 있는 집이었다.

그러나 반장에게는 머물고 싶지도 않은 집이 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