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세면대에 걸어놓은 새 수건의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사실 내 예민한 후각을 굳이 탓하지 않더라도 식초를 연상시키는 그 냄새를 좋아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난 그 빳빳하고 도톰한 조직도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흰 바탕에 선명하게 박힌 남색 글씨는 하나의 빈틈도 없이 궁서체를 이루고 있다.

"최영순 여사 환갑 기념"이라고......세수를 하고 물기가 채 마르지 않은 손으로 수건을 낚아챘다.

그리고는 그것을 길게 가로로 잡아 구깃구깃 주름을 잡았다.

세면대 가장자리에 대고 채찍질하듯 탁탁 쳐주기도 했다.

오만한 그 녀석을 길들여 주기 위해서였다.

내 손에 익숙한 것으로 말이다.

그 녀석이 굳이 이런 인위적인 방식으로 익숙하고 만만한 존재로 거듭나는 것도 좋지만, 이런 일은 시간이 알아서 해주는 몫이 더 크다.

군데 군데 실밥이 뜯기고 헤어지고, 글씨 부분도 균열을 내기 시작할 때쯤이면 수건도 나도 서로 편해진다.

맑은 날 빨래줄에 잘 말린 수건에 축축한 얼굴을 묻는 것은 작은 기쁨 중의 하나이다.

거기에는 햇빛 냄새라고 해야하나-습기를 빨아들일 여유가 있는 메마름에 온기, 그리고 바깥먼지의 냄새까지 희미하게 섞여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내 손길을 받아 아루어진 마모, 내 물기를 닦아내며 만들어진 조직의 성김이 있어야 했다.

내 어머니가 또 알면 진저리를 칠 일이다.

"최영순 여사 환갑 기념" 흰 수건은 아직도 새 것이지만 구겨져버렸고 궁서체는 이지러졌다.

화장실 문을 나서자 아랫배를 움켜쥐고 잰걸음으로 왔다갔다하던 어머니가 들어간다.

눈자위가 하얗게 드러나도록 나를 노려보는 일도 함께 하면서 말이다.

아까부터 화장실 문을 두드리며 "급해"라는 말을 다섯 번 정도 했기 때문에 그 정도 일은 이해해 줄 수 있다.

새로 들어온 녀석을 길들이는데 시간을 쓰지 않았다면 좀 빨리 나왔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봐야 일이분 차이겠지만. 내가 낯선 존재를 익숙한 존재로 만드는 일에 어김이 없었다면, 어머니는 아침마다 화장실을 가서 용무를 보는 일에 어김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나는 내게 어김없는 일만큼이나 타인의 어김없는 일도 인정할 정도의 여유는 가진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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