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어느 날 갑자기 불치의 병에 걸렸다는 선고를 받는다면 어떨까. 그 순간 누구를 떠올리게 될까. 그리고 생의 마지막 순간들을 어떻게 보낼까. 불치병에 걸린 여인은 드라마에서 숱하게 다뤄왔던 소재이다.

입술이 하얗게 마른 여주인공과 그녀를 바라보며 참을 수 없는 고통에 눈물을 흘리는 남 주인공. "변하는 것"이라지만 또 "영원할 것만 같은" 그것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는 연인들은 눈물을 펑펑 쏟으며 이 세상에서는 이뤄질 수 없는 사랑으로 시청자들을 애태워왔다.

그러나 여기 조금 다른 두 명의 여주인공이 있다.

너무도 사랑하는 남편과 아이들이 있는 단란한 가정을 가진 가정 주부인 그들은, 현재 그들의 남은 생을 세고 있다.

이처럼 애틋한 남녀의 로맨스에서 떠나 평범한 가정주부가 생을 마감하는 과정을 그린 김수현 작가의 "완전한 사랑"과 송지나 작가의 "로즈마리"는 매우 비슷한 이야기이자 또 전혀 다른 이야기이기도 하다.

김수현 작가와 송지나 작가는 둘 다 방송계에서 이름만으로도 막강한 시청자를 동원력을 가진 작가이고, 출연하는 배우들 또한 신인 풋내기가 아니다.

두 드라마는 모두 여주인공이 병에 걸린 사실을 알기 전, 겨울철의 화롯불 가처럼 단란하고 아기자기한, 보기만 해도 미소가 어리며 코끝이 찡해지는 행복한 가정의 모습을 그린다.

그러나 단 한 조각의 불행의 파편은 그 완벽한 행복에 커다란 칼집을 내어놓는다.

그들이 포기해야 할 행복의 크기를 알기에, 그들이 세상에 남겨놓고 가야할 상처의 크기를 알기에, 그들은 더욱더 가슴이 찢어진다.

그래서 그들은 이를 악문 사이로 새어나오는 흐느낌을 막지 못한다.

많은 면에서 두 여인은 너무도 비슷하다.

남편은 어리광 9단인 철부지이고, 여름날의 태양처럼 빛나는 두 아이들이 있고, 또 시댁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들의 남편 곁에는 미래의 무언가를 암시해 주는 듯 젊고 매력적인 아가씨가 있다.

그리고 그들은 함께 자신의 병에 대해 침묵한다.

그들은 그들의 병이 주위에 뿌릴 검은 그림자를 충분히 알기에, 행복의 빛 속에서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 혼자 스스로를 철저히, 소리 없이 태워 들어간다.

그렇게 조용히 꺼질 때까지, 그들은 하나하나 죽음을 위한 준비를 해나간다.

그러나 또 그들은 사뭇 다르다.

"로즈마리"의 정연은 처음 암 선고를 받았을 때 하필 왜 지금, 남편 일이 가장 바쁜 지금, 그리고 딸의 구연동화 연습도 봐 줘야 하는 지금 암에 걸렸느냐고 속상해 한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그래도 남편이 아니라 자신이어서 다행이라고 중얼거린다.

지나치게 눈물 짜내기 식의 희생적 인간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하는 송지나형의 이 여주인공은, 늘 웃는 모습으로 즐거운 가사일을 하며 남편에게 큰 소리한번 치지 않는 완벽한 "집안의 천사"이다.

그러나 "완전한 사랑"의 영애는 좀 다르다.

시한부 선고를 받고 망연자실해 들어 온 그녀는 보다 현실적이다.

자신을 냉대하던 시댁 식구들에게 정면으로 맞서고, 죽어 가는 자신과 이를 모르는 남편, 남겨두고 가야할 것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그녀는 화를 내고 짜증을 부린다.

남겨질 사람들에게서 자신을 지우려 애쓰면서도 자신이 지워질 것에 대해 두려워하는 그녀는, 인간적인 살고 싶은 욕망과, 세상에 대한 미련으로 가득 차 있는 피가 흐르고 살이 있는 인간으로 그려진다.

아직 시작단계에 있는 "로즈마리"는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모른다.

우리의 눈물을 한없이 쏟게 하고 완벽한 천사로서의 삶을 마감할지, 아니면 그녀도 날개를 접고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인간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줄지. 어떠한 여주인공을 선호할지는 시청자들이 선택할 몫이다.

그러나 두 주인공들을 비교하고 시시비비를 가리기 전에,"어머니"로서, 그리고 "아내"로서 그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적인 크기와 무게를 한번 생각해 보는 건 어떨지. 그리고 지금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크기와 무게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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