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피에르 다비트의 <다시만난 어린 왕자>를 읽고

생택쥐페리의 <어린 왕자>는 아마 누구라도 다 읽어보았을 것이다.

금발 곱슬머리에 천진난만한 질문을 퍼붓던 어린 왕자. 작은 별에서 도도한 장미 한 송이와 생택쥐페리가 그려준 상자 속 작은 양과 살고 있고 길들여진 여우 친구가 있는 어린 왕자. 책 속의 어린 왕자는 마치 실제 살았던 꼬마처럼 생생하고 그의 행동과 말들은 마치 명언처럼 독자의 가슴 속에 있을 것이다.

책 마지막에 생택쥐페리는 독자에게 부탁하고 있다.

만일 금발머리 사내아이 하나가 다가와, 당신이 그 아이가 누군지 알게 되거든 자신에게 꼭 알려달라고. 이 부분을 읽고 어린 왕자를 한번 만나봤으면 하고 생각해 본 사람이 많을 것 같다.

그런데 어린 왕자를 만나 본 사람이 있다.

장 피에르 다비드. 그가 바로 <다시 만난 어린 왕자>의 저자이다.

"생택쥐페리 선생님" 저자는 이 책에서 그를 선생님이라 부르고 있다.

서간문 형식의 이 이야기는 저자가 배를 타고 가다가 표류하여 외딴 섬에 도착하고 거기서 어린 왕자를 만나며 시작된다.

알겠지만 생택쥐페리는 비행기를 타고 가다가 추락하여 사막에 떨어지고 거기서 어린 왕자를 만난다.

처음의 시작부터 원전하고는 조금 다르다.

이것이 이 책의 특징이다.

<어린 왕자>의 속편이자 독립된 한 권의 책이라는 특징. 저자 장 피에르 다비드는 <어린 왕자>의 구성과 캐릭터만을 빌려왔을 뿐 나머지는 현대에 맞게 각색한다.

처음 어린 왕자가 지구에 착륙해 생택쥐페리를 만난 이후 오랜 시간이 흘렀고 어린 왕자도, 그의 여행담도, 지구의 상황도 많이 변했다.

그래서 저자는 어린 왕자가 만난 사람들의 직업과 지구의 상황을 많이 바꾸어 놓았다.

근대에 살고 있던 생택쥐페리가 만난 어린 왕자가 근대성을 접했다면, 다시 돌아온 어린 왕자는 현대성을 탐험하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만난 어린 왕자>는 단지 생택쥐페리의 <어린 왕자>를 각색한 책으로만 그치지 않는다.

물론 그 점으로도 이 책은 의미가 많지만 그보다 현대 문명의 모습을 담아냈다는 점이 더 의미 있다.

어린 왕자의 여행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는 현대 문명의 모순과 실상을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어린 왕자는 환경 보호론자의 모순, 이데올로기의 편협함, 광고의 허위성을 알게 되고 컴퓨터 통계학자의 모습, 그리고 경영인과 관념적인 정신주의자들을 만난다.

이것들은 분명 생택쥐페리가 살던 시대에는 없던 것들이다.

현대 문명의 소외성과 모순을 어린 왕자는 우리 대신 보여 준다.

이것이 이 책이 한 단계 진보했다고 보이는 점이다.

어린 왕자는 순수하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의 근대성 속에서 그 모습을 파악했듯이 현대에 와서도 그 모순을 파악하는 눈을 잃지 않았다.

우리가 무심코 넘어가는 현대의 많은 모습들이 어린 왕자에게는 낯설고 이상하게 보이나 보다.

어린 시절 <어린 왕자>를 읽고 감동했던 기억이 이 책을 통해 다시 전해져 왔다.

그러나 그 감동은 조금 더 삭막하다.

근대보다 더 발전한 현대에 잔존하는 기계와 인간의 금속성 불협화음. 그 음을 어린 왕자는 들을 수 있다.

장 피에르 다비드에 의해 어린 왕자는 현대에 부활한 것이다.

어린 왕자의 별에 호랑이가 살아서 더 이상 양을 키우기 어렵게 되자 어린 왕자는 저자에게 양을 부탁하고 저자는 다시 생택쥐페리에게 그 양을 아니, 정확히 말하면 양이 들어있다고 하는 상자를 보낸다며 글을 마친다.

어린 왕자가 저자를 잊지 않기를 그가 바라듯이 나도 어린 왕자가 나를 알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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