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 내부의 폭력에 초점 맞춰 … 28일(금) 우리 학교에서 강연 예정

‘색(色) 다른 페미니즘.’ 피부색 때문에 여자임을 잊어야 했던 흑인·유색인종 페미니스트들에게 ‘우머니스트(womanist)’란 이름을 달아준 미국흑인여성작가 앨리스 워커(Alice Walker)가 오는 25일(화) 우리나라에 온다.

28일(금) 오후2시 학관 414호에서 ‘자연·영성·여성성’을 주제로 특강도 예정돼 있다.

워커는 흑인 여성들이 인종과 성차별이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고 본다.

그는 에세이집 「어머니의 정원을 찾아서」(1983)에서 기존 페미니스트들이 중류 이상의 백인 여성들 입장만 대변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항한 ‘우머니스트’는 전통적으로 흑인 어머니가 딸에게 해주는 염려의 말인 “‘여자답게(우머니쉬 womanish)’ 굴어라”에서 비롯됐다.

우머니쉬는 어른스럽지 못함을 뜻하는 걸리쉬(girlish)의 반대말로, 용기있게 행동하는 흑인 여성의 성숙한 아름다움을 뜻한다.

워커는 기존의 학문·이론 중심 페미니즘이 ‘옅은보라빛’으로 표현된다면 우머니즘(womanism)은 그보다 한층 짙은 ‘자줏빛’이라고 주장했다.

이 색에서는 이중 억압 속에서 흑인 페미니즘이 품을 수 밖에 없는 진한 열정이 배어난다.

그는 흑인들의 실제 삶과 흑인 사이의 폭력에 주목한다.

그의 작품엔 흑인 남성이 백인 사회의 가부장제를 습득한 뒤 흑인 여성을 억압하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20세기 전반의 미국 남부에 사는 가난한 흑인 여성의 삶을 그린 워커의 「컬러퍼플(보랏빛)」(1983)은 이렇게 굴절된 사회 구조를 묘사하고 있다.

제목의 ‘보랏빛’은 ‘분노를 나타내는 붉은색과 침울을 나타내는 푸른색의 합’이다.

이는 남편에게 가혹하게 매를 맞은 주인공 씰리(Celie)의 여린 살에 남은 피멍이며, 의붓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한 뒤 그가 느끼는 감정이다.

즉, 흑인 남성들로부터 받은 상처의 색인 것이다.

일부 민족주의자들은 워커가 백인이 원하는 부정적 흑인 남성의 이미지를 창조했다며 비난했다.

흑인의 지위 향상을 위한 통합중심적 노력을 워커가 배신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사실 워커가 지향하는 이상적 인간상은 여성성과 남성성을 함께 지닌 ‘자웅동체’다.

이 때문에 그의 소설은 어느 한쪽의 성적 특성을 잃어버린 주인공이 이를 되찾기 위해 힘써 양성의 좋은 점들을 공유하는 과정을 그린다.

이에 따라 주인공은 높은 단계의 자아와 변화능력을 발휘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워커의 소설에서는 흑인 여성이 노예에서 인간으로 돌아가는 계기로 창조적인 작업을 내세운다.

「컬러퍼플」의 씰리는 편지를 통해 가부장제에 저항하고, 바느질을 통해 다른 흑인 여성들과 자매애를 돋운다.

「메리디언(Meridian)」(1976)의 주인공 메리디언은 흑인 교회에서 민족의 노래를 부르며 마음의 구원을 얻는다.

실제 삶에서도 워커는 필립스 휘틀리·조라 닐 허스턴 등 흑인 문학사에서 소외됐지만 뛰어난 창조성을 지녔던 여성작가들을 재발굴해 내는 데 심혈을 기울여 왔다.

워커의 소설은 고통을 딛고 선 사람과 사회의 가능성을 발견한다는 점에서 오늘날 모든 인간과 연관지을 수 있다.

물론 워커에게는 덕성여대 최은경 교수(영어영문학 전공)의 지적처럼 “궤도를 벗어난 듯한 주장, 유색인종을 옹호하는 등 짙은 정치적 색채”와 같이 독자 모두의 공감을 얻기 힘든 부분이 분명히 존재한다.

이 한계에도 불구하고 그의 창작 과정은 공동체·역사 의식이 충만한 작업으로 평가받는다.

그의 글쓰기는 그가 책에서 직접 밝히고 있듯이 “전인적인 여인, 완벽한 인간, 자기 앎에 몰두하는 흑인 여자”가 되기 위한 개인적 과정이다.

결국 모든 인간을 하나의 끈으로 묶어내 포용하는 ‘우머니스트’의 정신은 바로 워커 자신에 대한 긍정, 그리고 인간에 대한 사랑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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