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대학출판부는 모두 힘든 상황이다.

” 연세대학교 출판문화원 남광홍 출판부장은 학생 수의 감소와 낮은 은행 이자율로 인한 재정의 악화, 규모의 축소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내 대학출판부의 사정에 대해 이같이 토로했다.

우리나라 대학출판부는 교재 출판에서 얻은 이익금을 상업성이 거의 없는 학술 도서 간행에 바로 투입해야 하는데다 대학의 보조금 지원도 적은 형편이다.

미국 대학의 경우 정부나 학교에서 지급하는 출판조성비를 통해 출판비용의 70∼80%를 보조받고 있다.

영국에서는 성서를 대량 출판하고, 여기서 얻은 이익으로 대학출판부를 운영한다.

남광홍 출판부장은 “대학출판부의 주요 독자층이 돼야 할 대학생들은 책을 잘 사지 않기 때문에 출판부는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며 재정·경영상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의지를 내비쳤다.

뿐만 아니라 대학이 대학출판부의 기반인 기초학문 연구에 소홀해지면서 대학출판부는 그 위상마저 위협받고 있다.

최근 전자책(e-book) 등 학술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새로운 매체들의 등장과 취업률을 높이기 위한 실무 위주의 대학 교육 등은 변화한 학문 세태를 실감케한다.

대학출판부는 전통적으로 ‘교수·연구원 집단의 교육 연구 → 출판부의 학술도서 출판 → 도서관의 학술 정보 수집과 개발 → 교수집단의 정보 활용 및 재생산’으로 이어지는 학술 커뮤니케이션의 중추로 여겨져 왔다.

부산대 송정숙 교수(문헌정보학 전공)는 “대학출판부는 책을 통해 강의실이라는 한정된 공간을 넘어 학생은 물론 지역사회에까지 지식을 보급한다”며 “이는 또 다른 의미의 교육활동”이라고 평가했다.

또한 학문공동체인 대학 학자들의 연구결과를 다른 상업출판부보다 신속히 알아내 대학 내 신지식과 신학문을 발빠르게 전달할 수 있는 이점도 있다.

이는 학자들은 물론 해당 학문의 발전에도 기여한다.

문제는 대학출판부가 ‘학문과 지식을 생산하고 결집하는 기구’라는 기존의 기능을 확고히 실행지 못하는 데 있다.

이는 교수들의 미진한 연구 활동에 기인한다는 지적이 있다.

출판평론가 표정훈 씨는 “미국 대학 사회에는 ‘publish or perish(출판하지 않으면 죽는다)’라는 말이 격률처럼 여겨진다”고 전했다.

이는 미국 대학의 교원들이 ‘종신 재직권(tenure)’을 획득·유지하기 위해 연구 성과를 발표하려고 치열하게 경쟁하는 풍토에서 유래한 말이다.

그는 이어 “대학출판부의 출판 활동은 대학의 학문 성과를 평가하는 기준이 될 수 있다”며 “대학출판부를 육성하려는 대학 자체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대학출판부가 혹독한 시장 경제 속에서 입지를 굳히려면 대학 내 학술 연구물만 출간하려는 고집을 버려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이를 위해 독자층의 범위와 다루는 책의 종류를 확장할 필요가 있다.

이에 따라 이화여대 출판부를 비롯한 몇몇 대학에서는 대학 내 연구 성과물을 출판하는 대학출판부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독자층을 넓히기 위한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서울대 출판부 권영자 출판기획과장은 “인문학 도서를 탐독하는 지식인층은 내용이 풍부한 학술교양서에 목말라 있다”며 “대학출판부가 외부로 눈을 돌려 이런 특정 대중을 위한 도서를 발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런 시도의 일환으로 건국대 출판부는 국내·외 작가들의 작품 세계를 누구나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쉽게 해석한 「문화의 이해와 감상 시리즈」를 펴내고 있다.

그런가 하면 지난 해 이화여대 출판부에서 펴낸 우리 학교 박석순 교수(환경학 전공)의 교양 만화 「만화로 보는 박교수의 환경재난 이야기」는 대학 출판계로부터 ‘딱딱한 학술 도서만 내는 곳으로 여겼던 대학출판부에 대한 고정관념을 깬 새로운 시도’라는 평가를 받았다.

130여년 전 “훌륭한 대학의 조건은 교육·연구·출판”이라고 했던 미국 존스홉킨스대의 초대 총장 다니엘 질만의 말은 아직도 유효하다.

경북대 이호철 교수(농업경제학 전공)는 “대학출판부가 기존의 가치를 이어나가려면 ‘학술 자료의 생산’이라는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며 “사회의 급격한 변화에 맞춰 기획·제작·유통의 전 과정을 쇄신한다면 새로운 대학 출판문화, 학술문화를 열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