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주부의 하루 일과’. 학문과는 관계 없어 보이는 단어들이지만 이는 최근 떠오른 가정학의 연구 주제 중 하나다.

이처럼 예전의 풍토에서 하찮게 여겨졌던 삶과 생활의 작은 주제에 대한 연구가 다양성을 중시하는 포스트모던의 기치 아래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우리 학교 한국학 특성화기반조성사업단 주관으로 열린 이번 학술대회도 이 흐름을 반영한 것이다.

이 날 학술대회에서는 ‘일상성’이라는 큰 주제 아래 조선시대의 편지지 분석에서부터 대중가요·인터넷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소주제들이 쏟아져 나왔다.

포스트모던이 껴안은 우리의 다양한 일상 기조강연을 한 우리 학교 이어령 석좌교수(국어국문학 전공)는 “마당 쓸기 등 일상의 사소한 실천을 통해 하늘의 도(道)에 이르는 선비들의 ‘하학이상도(下學以上道)’의 이치를 바늘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아프리카에서 발생한 인류는 유럽으로 첫 대이동을 감행했다.

그 뒤 일부는 몽골 등지로 움직였다.

이들은 뼈바늘로 방한복을 만들어 입으며 몽골 대륙의 추위를 견뎌낸 덕분에 오늘날 몽골로이드로 살아남았다.

인류가 세 인종으로 분화하는 엄청난 과정에 바늘처럼 하찮아보이는 물건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다.

사회학의 일상 연구는 이처럼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생활 풍경을 낯설게 바라보는 것에서 출발한다.

이런 신선한 시각과 삶을 바탕으로 한 생생한 경험이 일상 연구가 가진 힘이다.

또한 이 연구 방법은 침묵 속에 외면당했던 인물들의 삶 속으로 파고드는 기회를 마련하기도 한다.

우리 학교 김현숙 연구원(사학 전공)은 1880년대 이후 조선 정부에 ‘취업’한 외국인 330명의 일상생활을 분석했다.

이들은 총리대신(5000元)보다 높은 연봉(6000元)을 받았고, 극동에서 이름을 날려 출세하려는 야심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격동의 개화기 속에서 생각만큼 편한 생활을 누리지 못했다.

한옥의 서까래와 문지방 위턱이 그들의 키에 비해 낮아 머리를 자주 부딪쳐야 했고 조선인에게 자기 나라 음식 조리법을 가르치느라 애를 먹었다.

게다가 이들은 우리 사회에 최근에서야 나타난 현상인 ‘기러기 아빠’를 이미 120여 년 전에 경험하고 있었다.

이는 하층민과 소외 계층의 구체적 삶을 통해 역사를 바라보는, 이른바 서발턴(subaltern) 분석에 속한다.

일상사에 대한 이 같은 미시적 접근에는 특정 집단·인물의 삶을 문화적 관계망 속에서 그려내는 작업을 통해 역사의 진실을 드러내려는 희망이 내재돼 있다.

“…언제나 따돌림만 당했네 / 난생 처음 들어본 조센징…” 우리 학교 송영빈 교수(일본어 전공)는 재일 교포 가수 아라이 에이치의 노래와 일생 분석을 통해 재일교포의 정체성을 규명했다.

그의 노래 ‘청하의 길-48번-’에는 죠센징이란 이유로 차별받온 인생역정과 소외감, 그리고 민족의식이 담겨있다.

한국의 일상 지켜온 여성 일상문화연구 주역될 것 그간 우리 학문에 주체적인 논리가 없고, 실제 삶과의 괴리가 크다는 지적이 있었다.

일상 연구와 미시적 관점을 옹호하는 학자들은 수치로 환산된 연구 자료만을 주목한다면 개별 사실이 내포하고 있는 풍부한 내용을 무시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리고 이처럼 우리 삶을 이야기하는 학문이 늘어난다면 ‘우리식’으로 학문하는 일이 좀 더 수월해질 것이라고 평가한다.

이어령 교수는 “한국의 일상문화를 지켜온 여성이 모여있는 이화에서 이를 연구한다면 여성으로서의 경험과 삶이 큰 장점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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