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목) 오후3시30분 인문관 108호에서 ‘한국 기녀의 문학적 세계’를 주제로 소규모 강연이 열렸다.

이 강연은 이탈리아인인 D’urso씨가 우리말로 진행해 더욱 주목을 받았다.

D’urso씨는 이탈리아 베네치아 대학 동양학과 한국어문학부를 졸업하고 서울대에서 국어학을 전공했다.

이 날 D’urso씨는 특히 ‘문학적 기록을 통해 본 조선 시대 기녀 제도’에 초점을 맞춰 강연했다.

조선 왕조는 국가 제도적 차원에서 기녀를 관리했다.

3년에 한 차례씩 중인이나 천민 중에서 기녀를 선발해 중앙의 관속도감에서 기녀 수업을 받게 했던 것이다.

이들을 교육시킨 후 중앙이나 지방 관청에 파견해 관기로 활동하게 했다.

당시의 기녀는 단순히 사대부의 노리개가 아닌 중요한 문화 주체였다.

기녀를 지칭할 때 쓰는 ‘기’라는 글자는 당시 ‘현악기를 다룰 줄 아는 여자(技)’라는 뜻이었다.

또한 기녀들은 음악·무용·시 등을 전문적으로 배웠기 때문에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예술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즉 기녀는 일종의 종합 예능인이었다는 것이다.

당시 양반들도 기녀에게 정신적·지적 접촉을 기대했다.

양반 사대부 가문의 여성들이 도덕적·윤리적 덕목에 얽매여 있던 데 반해 기녀들은 창작·예술 활동이 자유로웠기 때문이다.

이는 기녀와 양반들이 주고 받은 시들의 높은 수준에서도 알 수 있다.

그러나 유교적 사회에서 기녀들의 문화·예술적 업적은 제대로 평가받기 어려웠다.

또한 작품이나 기녀 자체에 대한 자료도 부족했기 때문에 그간 문화 주체로서 기녀에 대한 연구는 잘 이뤄지지 않았다.

D’urso씨는 “이제 예술인으로서의 기녀에 대해 활발한 연구가 진행되기를 바란다”며 “이를 위해서는 사상·제도·역사 등 총체적인 접근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진 질의·응답 순서에서 김영희(중앙대 일반대학원 무용학 전공 졸업)씨는 “일제 강점기에 유곽을 비롯한 일본의 기생 문화가 들어오면서 우리 나라의 기녀가 천박한 것처럼 왜곡됐다”며 “이런 역사적 흐름도 기녀의 문화적 역할에 대한 연구를 방해한 요인”이라고 보충 설명을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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