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배 고려대 법학 전공 복제양 돌리의 탄생, 유전자 조작식품의 등장, 장기이식의 보편화, 인간 게놈 프로젝트 발표 등 일련의 생명공학적 성과들은 한편으로는 놀라움과 기대를, 다른 한편으로는 두려움과 혼란을 던져주고 있다.

불치병의 치료, 우량 식용생물의 대량생산등은 인류가 질병과 기아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획기적인 계기를 마련해 준다는 기대를 주고 있지만, 이는 또한 심각한 윤리적·법적·종교적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이러한 생명공학의 양면성은 생명공학이 과학자의 전유물이 아니라 전체 사회구성원의 삶과 밀접하게 관련된‘사회적 문제’라는 점을 보여 준다.

이러한 상황에서 생면공항의 문제에 대해 여러 분야의 많은 사람들이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지고 논쟁을 벌이고, 합의를 도출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 과정에는 과학자들뿐만 아니라 사회학자, 윤리학자, 법학자 등이 갖자의 전문적인 관점을 가지고 참여해야 하며 일반 시민들의 생각 역시 토론의 장에서 비중있게 고려돼야 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생명공학에 대한 전문가적 관심과 사회적 관심은 적어도 아직까지는 턱없이 부족한 형편이다.

그런 점에서 박은정 교수의「생명공학 시대의 법과 윤리」(이화여대 출판부)와 같이 법철학적 시각에서 생명공학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룬 단행본이 출간되었다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이 책은‘법철학’의 입장에서‘생명공학’이 제기하는 다양한 문제들 검토함으로써, 생명공학적 공론영역에의 의미있는 참여를 시도한다.

법철학적 시각으로 생명공학의 문제를 분석한다는 것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법찰학자는 철학적 진지함으로 사안을 성찰하기도 하지만, 구체적인 사례를 해결할 수 있는 실천적인 대안을 내놓으려고 한다.

생명공학의 문제에서도 철학적·윤리학적·사회학적 시각으로 거시적인 조망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구체적인 생명 공학적 분쟁을 해결해 나가는 ‘법적 절차’의 구상까지 시도하는 것이 바로 법철학자의 작업이 가지고 있는 장점이다.

「생명공학 시대의 법과 윤리」는 바로 이러한 법철학적 사유의 장점이 잘 드러나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먼저 대략적인 책의 내용을 보자. 제1부는 책의 총론격에 해당하는 부분으로서 생명공학이 던지는 새로운 물음이 어떤 것이 있는지 살펴보고, 이에 따라 생명윤리와 인권의 변화방향과 생명공학의 합리적 규제를 위해 법정책을 종합적으로 고찰한다.

제2부에서는 유전자 진단·치료, 뇌사와 장기이식, 생명복제 등의 구체적 쟁점들에 대한 분석을 내놓고 있으며, 이어서 제3부는 최근의 논의들을 좀더 자세히 소개하고 있는데, 인체에 대한 소유격 문제, 생명공학적 발명의 특허 문제, 의료윤리문제, 여성주의와 생명공학의 문제등의 주제를 포괄하고 있다.

이 책은 이렇게 다양한 쟁점들을 분석하는 과정에서,‘법이 생명공학의 문제에 개입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의 여부’, ‘법을 개입시켜야 하는 경우, 행정적·사법적·입법적·헌법적 대응의 장점과 단점’, ‘구체적인 법제화의 방향과 내용’등 법철학자의 고유한 역할에 의해서만 풀릴 수 있는 물음들을 차분하면서도 밀도 있게 다루어 나가고 있다.

이 책의 또 다른 장점은 거시적인 조망과 세밀한 분석을 고추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먼저 이 책은‘인간의 존엄’이라는 가치를 잣대로 삼아 생명공학의 성과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구시대의 유물처럼 보이는‘인간의 존엄’이라는 가치가 생명공학의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며, 이를 지켜나가는 것이 실천적으로 특히 중요하다는 것이 이 책의 전반에 흐르는 기본적인 시각이다.

다른 한편으로 이 책은 구체적인 쟁점들에 대한 세부적인 분석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600여 페이지에 걸쳐 현대 생명공학에 관련된 세부 논점들을 거의 빠짐없이 검토하고 있음은 물론이고, 생명공학에 관련되 최신의 방대한 문헌들을 성실하게 검토하여 저자 고유의 관점에 따라 분석해내고 있는 것 또한 이 책이 가지고 있는 남다른 미덕이라고 하겠다.

그러므로 생명공학과 인류사회의 미래에 대해 비판적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결코 이 책을 그냥 지나쳐갈 수는 없을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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